Article/Review
Pharoahe Monch [Desire]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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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5. 1. 23:44
※ 2007년 웹진 리드머(http://www.rhythmer.net)에 기재한 글.
1. Intro
2. Free
3. Desire
4. Push
5. Welcome To the Terrordome
6. What It Is
7. When the Gun Draws
8. Let's Go
9. Body Baby
10. Bar Tap
11. Hold On
12. So Good
13. Trilogy
Record Label : SRC Records
Released Date : 2007-06-26
Reviewer Rating : ★★★
어디서 무얼 했나
'99년 이후 무려 8년만이다. [Internal Affairs] 이후 패로아 먼치(Pharoahe Monch)의 이름으로 차기작이 나오기까지 무려 8년이란 세월이 필요했다. 오거나이즈드 컨퓨젼(Organized Konfusion, 이하 O.K)의 반쪽이던 프린스 포(Prince Po)가 독자적인 행보를 구축하며 두 장의 솔로 앨범을 선보이는 동안에도 패로아 먼치의 새 앨범은 좀처럼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히트 싱글과 기존 곡들을 모은 [Y'all Know the Name]과 같은 앨범이 웹상에서 떠돌아다니긴 했지만 그 또한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컴필레이션 형식의 앨범일 뿐, 정규작과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타 뮤지션의 앨범에 참여하는 경우는 잦았기에 그간 발매된 여러 힙합 앨범의 크레딧에서 'Pharoahe Monch'라는 이름을 찾아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그의 이름을 발견할 때마다 정작 패로아 먼치의 앨범은 왜 깜깜 무소식인지 궁금증만 더해졌다.
패로아 먼치의 새 앨범 작업이 늦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아마도 게펜/로커스(Geffen/Rawkus) 소속이던 그가 셰이디(Shady) 레이블과의 계약으로 마찰이 생기고 자유 계약(free agent)으로 되기까지, 그리고 마침내 SRC 레코드라는 보금자리를 정할 때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던 탓으로 보인다. 여하튼 각종 루머가 난무하는 가운데 그의 신작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가 등장하던 시기는 싱글 "Push"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던 작년 이맘때쯤이었고, 2006년 11월 드디어 모든 준비를 마치고 [Desire]가 그 실체를 드러내는 듯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Desire]의 등장은 미뤄진 채 12월 경 돌연 [The Awakening]이란 타이틀의 믹스테잎만이 얼굴을 내밀었고, 2007년이 되어서도 6월까지 발매 연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뚜껑을 열어볼 수 있었다.
About [Desire]
이처럼 갖은 산고 끝에 모습을 드러낸 [Desire]에는 패로아 먼치 본인 외에도 알케미스트(Alchemist), 디트로이트의 블랙 밀크(Black Milk)와 디넌 포터(Denaun Porter), 그리고 로커스 시절부터 동고동락하던 리 스톤(Lee Stone) 등이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작품에선 O.K와 솔로 1집 시절보다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 패로아 먼치의 의도가 잘 드러난다. 물론 최고의 리릭시스트라는 명성에 걸맞게 재치 있는 가사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고 그런 면은 역시나 평단의 호평을 이끌고 있지만, 그보다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다양한 스타일의 시도가 훨씬 두드러진다. 첫 싱글 "Push"를 들으면 캘리포니아 밴드 타워 오브 파워(Tower of Power)를 대동하여 혼(horn) 사운드를 곁들임과 동시에 패로아 먼치가 직접 '랩'이 아닌 '노래'(singing)까지 하는 이채로움을 맛볼 수 있다(여담이지만 싱글 공개 당시 노래하는 패로아 먼치의 모습이 참으로 신선하면서도 쇼킹한 나머지 그도 모스 데프(Mos Def)를 닮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패로아 먼치 본인이 생각해도 정말 잘 만들었다며 자화자찬하던 "When the Gun Draws"는 날아가는 총알을 의인화하여 1인칭 시점으로 묘사한 O.K 2집의 명곡 "Stray Bullet"의 후속 버전이며, "Welcome to the Terrordome"을 통해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90년대 초 동명 곡을 커버하기도 했다. 또한 제목부터 신나는 "Let's Go"를 발판 삼아 분위기를 한층 끌어올리기도 하며, 앨범 말미에 이르면 벌스(verse)마다 각기 다른 비트를 들을 수 있는 9분짜리 대곡 "Trilogy"도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스타일의 시도는 역으로 어떤 분위기에 초점을 맞춰야할지 모호해지는 난감함을 초래하기도 한다. 게다가 "Desire", "Push", "Let's Go" 정도를 제외하곤 앨범 전반적으로 귀에 감기는 트랙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점은 [Desire]가 갖는 가장 큰 결점으로 지적된다. 비록 패로아 먼치 본인은 무척 만족스럽다고 했지만 "When the Gun Draws"는 적절한 샘플 활용으로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를 이끌던 O.K 시절의 "Stray Bullet"과 견주어 볼 때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대폭 삽입된 게스트 보컬리스트들의 목소리는 가끔 주객전도의 역효과를 낳기도 한다(예를 들어 "Hold On"을 듣다 보면 어느새 주인공 패로아 먼치의 랩보다 오히려 게스트 에리카 바두(Erykah Badu)의 목소리에 이목이 집중된다). 또한 패로아 먼치와 프로듀서 션 케인(Sean Cane)에겐 미안한 소리지만 역동적인 비트가 돋보이는 "Welcome to the Terrordome"에서 느껴지는 막강함의 원천은 퍼블릭 에너미일 뿐, 패로아 먼치는 단지 그들의 히트 싱글을 '재탕'했을 뿐이라는 인상이 깊다.
또한 O.K 시절부터 패로아 먼치를 지켜본 올드팬들에게도 이러한 변화의 시도가 반가울 리 만무하다. 'Simon Says, Get the Fuck Up!'을 외치던 [Internal Affairs]에서의 의기양양하고 악랄하던 모습과 O.K 시절의 재기발랄함은 [Desire]로 이어지면서 눈에 띄게 줄었다. 세월이 변했으니 기존의 이미지에서 탈피하여 보다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은 필연적이지만, 화려한 랩의 향연을 기다려온 팬들은 본 작을 듣는 순간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흠 잡을 데가 없던 O.K 시절의 깔끔함이나 변화무쌍한 플로우로 비트를 쥐락펴락 하던 [Internal Affairs]와 달리 얼터너티브 랩 앨범의 성향이 짙은 [Desire]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은 수십 번을 들어도 '신선함'보다는 '산만함'에 가까워 보인다. 정제된 사운드 안에서 읊조리는 랩과 노래하는 패로아 먼치의 모습은 나름대로 신선하게 다가오지만, 오랜 세월 패로아 먼치가 쌓아온 업적과 명성을 감안하면 충분히 더 좋은 작품을 만들 능력이 되는데도 왜 이런 결과물이 나왔는지 의구심만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