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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ee P [Perseverance] (2007)

epmd 2011. 5. 1. 23:55


※ 2007년 웹진 리드머(http://www.rhythmer.net)에 기재한 글.

01. Intro
02. The Hand That Leads You
03. The Man to Praise
04. Legendary Lyricist (with Madlib)
05. Watch Your Step (with Vinnie Paz, Guilty Simpson)
06. Who With Me?
07. 2 Brothers From The Gutter (with Diamond D)
08. Ghetto Rhyme Stories
09. Throwback Rap Attack
10. No Time For Jokes (with Chali 2NA)
11. Last of The Greats (with Prince Po)
12. Bx (Interlude)
13. Put It on The Line
14. The Dirt and Filth (with Aesop Rock)
15. La (Interlude)
16. Mastered Craftsman
17. Raw Heat (45 Version)
18. The Lady Behind Me
19. Outro

Record Label : Stones Throw
Released Date : 2007-09-17
Reviewer Rating : ★★★★☆

데뷔 20년만의 첫 정규 앨범
우리가 알고 있는 뮤지션 중에는 1년에 한 장 이상의 앨범을 만들어 팔아치우는 이가 여럿 있다. 그것이 왕성한 창작력을 과시하는 차원에서 비롯된 자의적인 행보인지, 아니면 레이블과의 계약 등을 비롯해 뮤직 비즈니스의 실타래에 엉켜 타의적인 이유에서 나오는 결과물인지는 경우에 따라 제각각이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데뷔한지 20년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첫 정규 앨범을 공개하는 선수도 있다. '88년에 선보인 싱글 "Let the Homicide Begin"이 공식적인 데뷔 앨범이지만 사실 '79년부터 랩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고 하니 힙합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산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뮤지션, 바로 'Rhyme Inspector' 퍼시 피(Percee P)이다. 힙합 음악을 즐겨 듣는 이들 중에 'Percee P'라는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가 있겠지만 그는 디아이티씨(D.I.T.C)의 에이지(AG), 로드 피네스(Lord Finesse)부터 라지 프로페서(Large Professor), 쥬라식 파이브(Jurassic 5), 그리고 제다이 마인드 트릭스(Jedi Mind Tricks)에 이르기까지 많은 뮤지션과 콜라보레이션을 펼쳐왔던 힙합계의 감초 같은 존재이다. '90년대 후반 공연이 있는 날이면 뉴욕 팻 비츠(Fat Beats) 스토어의 문 앞에 자리를 잡고 자신의 랩이 담긴 CD-R을 집에서 자체 제작하여 직접 판매하곤 했던 그가 full-length 앨범을 발매하게 된 계기는 스톤 스로우(Stones Throw)의 수장 피넛 버터 울프(Peanut Butter Wolf)를 만나면서부터였다. 2003년 스톤 스로우와의 계약 후 제이립(Jaylib)의 [Champion Sound]를 위시하여 레이블의 이름을 달고 나오는 앨범마다 자신의 이름을 하나둘씩 새겨 넣으며 나름대로 인지도를 넓혀가더니, 2005년에는 '88년부터 '04년까지의 행보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컴필레이션 앨범 [Legendary Status]를 공개하며 정규 앨범의 발매가 머지않았음을 암시했고, 2007년 9월 마침내 'Perseverance'(인내, 인고, 불굴의 노력)라는 타이틀의 퍼시 피 생애 첫 정규 앨범을 공개했다.

작업과정
모든 곡의 프로듀싱은 스톤 스로우의 간판 프로듀서 매드립(Madlib)이 맡아 엠에프 둠(MF Doom)과의 프로젝트 이후 또 하나의 걸출한 프로듀서-래퍼 프로젝트가 실현되었다. 신기하게도 퍼시 피는 모 웹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와 매드립은 스튜디오에서 직접 만나 같이 녹음한 적이 없었다."고 하였는데, 이는 매드립이 너무 바쁜 관계로 퍼시 피와 대면하여 곡 하나하나를 일일이 만들어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대신 매드립이 시간이 날 때마다 만들어둔 여러 비트를 미디어를 통해 퍼시 피에게 전달하면 그걸 받아서 청취한 후 선별하고, 본인의 랩을 씌우고, 비트를 수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를 수차례 반복하여 대략 CD 석 장에 육박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음원을 만들었고, 그것을 토대로 [Perseverance]가 완성된 것이다.

[Perseverance]
독특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앨범이지만 작업 배경과는 무관하게 퍼시 피의 랩은 신기에 가까울 만큼 막강하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매드립의 비트 또한 탄탄하다. '92년의 "Lung Collapsing Lyrics"나 [Perseverance]에 수록된 "Throwback Rap Attack" 등의 곡명처럼 20여 년간 갈고 닦은 빠른 랩과 무차별적인 라임이 앨범 전반에 걸쳐 스며들어 있다. 초반부에선 "The Man to Praise"를 통해 퍼시 피라는 뮤지션이 살아온 삶에 대해 회고하고, 이어지는 "Legendary Lyricist"로 자신감에 충만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수많은 양질의 곡을 제치고 비니 패즈(Vinnie Paz of Jedi Mind Tricks)와 길티 심슨(Guilty Simpson)이 함께 매드립의 비트 위를 걷는 -매드립의 [Beat Konducta] 시리즈에 쓰였던 비트를 재활용한- "Watch Your Step"이 첫 싱글로 낙점된 것은 다소 의문스럽지만, 이어지는 다이아몬드 디(Diamond D), 유년 시절부터 알고 지내왔던 프린스 포(Prince Po), 그리고 찰리 튜나(Chali2Na of Jurassic 5)에 이르는 타 게스트들의 적절한 지원사격은 놓칠 수 없는 즐거움으로 작용한다. 앞서 말한 "Throwback Rap Attack"에서의 매드립의 스네어 드럼은 퍼시 피의 랩 못잖게 인상적이며, 퍼시 피가 살아온 곳을 의미하는 "BX"(Bronx), 그리고 이주하게 된 "LA"의 인터루드(Interlude)를 거쳐 말미에 다다르면 압박이 최고조에 달하는 "Mastered Craftsman"이 기다리고 있다. 'Heed device, Percee P is nice, coming back to lead us twice like Jesus Christ, Was my flow to blow? Now all you need is ice'와 같은 라임으로 점철된 구절이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하는 타이트한 가사를 맛보는 순간 도대체 어떻게 이런 가사를 쓰고, 또 어떻게 랩으로 구사하는지 의구심만 남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극한으로 치솟은 분위기는 '랩'을 의인화한 독특한 비유법을 통해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지탱해준 랩 음악에 대하여 감사의 메시지를 전하는 -마치 커먼(Common)의 "I Used to Love H.E.R"를 연상케 하는- "The Lady Behind Me"와 함께 잔잔함으로 선회하며 서서히 막을 내린다.

현명한 선택
본 작을 들으면 스톤 스로우와 계약하고 LA로 적을 옮긴 퍼시 피의 선택이 바람직했다는 결론이 간단하게 나온다. 20여 년간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단번에 증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잘 만들었다. 웬만해선 따라 하기조차도 힘든 빠른 랩은 물론이거니와 비트를 선별하는 능력 또한 탁월하며, 근래 우후죽순으로 쏟아져 나오는 힙합 앨범 중에 비슷한 스타일의 그것이 있었는지 찾기 힘들겠다 싶을 만큼의 신선함도 매력으로 다가온다. 20년 만에 이토록 빼어난 실력을 만천하에 알릴 수 있었다니,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의 재능이 빛을 발하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속해서 스톤 스로우의 일원으로 남아 [Perseverance]만큼의 앨범을 꾸준히 만들어 낸다면 팬들의 관심과 사랑도 지속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