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Artist
Boogie Down Productions - '80년대 사우스 브롱스를 대표하는 힙합 크루
epmd
2011. 5. 8. 01:15
※ 2009년 웹진 리드머(http://www.rhythmer.net)에 기재한 글.
힙합 선생 케이알에스-원(KRS-One, 이하 KRS)이 메이저 레이블인 자이브(Jive)를 떠나 언더그라운드를 주 무대로 삼은 지도 십 년 가까이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빌보드 싱글/앨범 차트에서 선전하고 있는 뮤지션만을 바라본 이들에게 케이알에스-원이라는 이름은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부기 다운 프로덕션(Boogie Down Productions, 이하 BDP)을 아는 이는 더더욱 찾기 힘들 것이다. '90년대 힙합 음악의 흔적에서 점점 더 멀어져만 가는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작금의 상황은 소위 말하는 골든 에이지의 향수에 심취했던 이들에겐 아쉬움만 더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고자 이번엔 KRS가 속해 있던 BDP 크루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결성 과정 및 스캇 라 록(Scott La Rock)의 사망
BDP는 KRS가 뉴욕 브롱스의 무주택자 상담소의 카운슬러로 근무하던 디제이 스캇 라 록(DJ Scott La Rock)을 만난 것을 계기로 결성된다. 둘 다 브롱스의 토박이였기에 Bronx의 별칭에서 착안하여 'Boogie Down'이란 이름을 지었다. 친분을 쌓고 음악을 만들기로 한 이들은 비트 박서 디-나이스(D-Nice)의 자그마한 참여, 그리고 울트라마그네틱 엠씨스(Ultramagnetic MC's)의 주축이던 세드 지(Ced Gee)의 도움을 통해 첫 앨범을 발매하게 된다.
스캇 라 록 사후의 BDP - 1. [Criminal Minded] (1987)
현재 무대에서 활동하는 많은 뮤지션에게 적잖은 영감을 불어넣어 준, 힙합 역사에 길이 남는 앨범으로 추앙받는 BDP의 데뷔작 [Criminal Minded]는 발매 당시부터 크나큰 파급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사우스 브롱스가 힙합의 태생지임을 당당하게 말하는 "South Bronx", 그리고 엠씨 샨(MC Shan)의 "The Bridge"에 대응하는 "The Bridge is Over"라는 곡으로 QB(퀸즈브릿지)의 전설적인 힙합 집단 쥬스 크루(Juice Crew)와 벌인 설전은 매우 유명하여, 현재 힙합 씬에서 매일같이 볼 수 있는 디스(Disrespect Rap)의 시초라는 설이 있을 만큼 역사적인 사건이 된다. 에이씨/디씨(AC/DC)의 기타 리프가 담긴 'Dope Beat'는 런-디엠씨(Run-DMC),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와 더불어 힙합과 록을 접목이라는 '80년대의 참신한 결과물 중 하나였고, "Remix For P is Free"에서 느낄 수 있는 '레게음악과 힙합의 융합'은 BDP의 차기작에서도 꾸준하게 등장하는 레퍼토리가 되었다. 이러한 독특함뿐만 아니라, 사우스 브롱스에서 그들이 보고 느낀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가사를 통해 갱스터 래퍼들에게 영향을 준 작품이라는 평가까지 더해졌기에 본 앨범은 힙합 역사를 논할 때에 빼놓을 수 없는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2. [By All Means Necessary] (1988)
1집 발매 후 디제이 스캇 라 록이 다른 이의 싸움을 말리다 본인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여, KRS가 BDP 크루의 중추적인 존재로 남는다. 프로듀스, 컷팅, 스크래칭을 담당하던 스캇 라 록의 공백을 KRS 본인과 그의 친동생 케니 파커(Kenny Parker)의 프로듀싱으로 메우는 가운데, '88년 BDP의 소포모어 앨범 [By All Means Necessary]가 완성된다. KRS 자신의 랩이 철학을 담아내는 도구임을 말하며 랩퍼로서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는 'My Philosophy'를 비롯하여, 전작의 "Dope Beat"을 잇는 록 샘플링 트랙 "Ya Slippin'", 블랙 스타(Black Star)의 "Definition"으로 친숙해진 원-투-쓰리 코러스의 오리지널 버전을 감상할 수 있는 "Stop the Violence", 쿨 모 디(Kool Moe Dee), 에릭비 앤 라킴(Eric B. & Rakim) 등 당시 최고로 군림하던 타 뮤지션에 대한 존중과 함께 '나는 여전히 최고'라는 외침으로 당찬 포부를 밝히는 "I'm Still #1" 등이 수록된 2집은 전작 못잖은 화려한 잔칫상이었다. "Stop The Violence", "Illegal Business"와 같은 트랙은 KRS를 '선생' 혹은 '철학자'라는 이미지로 각인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냈고, 그러한 이미지는 현재까지도 남아 있게 되었다.
3. [Ghetto Music: The Blueprint of Hip Hop] (1989)
앨범 커버 전반에 걸쳐 'Ghetto'라는 단어를 남발하다시피 하는 3번째 앨범에서도 BDP의 참신한 시도는 계속되었다.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가 여전한 가운데 이번엔 리얼 연주가 가미된 곡을 찾아볼 수 있기에 BDP의 실험 정신이 시들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Jah Rulez"와 같은 리얼 연주 트랙뿐만 아니라 악기 연주에 디-나이스의 비트 박스를 첨가한 곡("Breath Control")도 포함되었고, 데뷔 앨범부터 이어지던 레게리듬은 "Bo! Bo! Bo!"를 통해 계승된다. KRS는 당시 앨범 활동과 더불어 신문에 칼럼을 기고하고, 미국 유명 대학의 강사로 참여하는 등 사회 활동을 병행하곤 했다.
4. [Edutainment] (1990), [Sex and Violence] (1992)
BDP는 4집부터 위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제작하는 곡의 세련됨이야 자연스레 높아졌지만, 예전만큼 참신하고 강력한 무언가를 느끼기가 힘들어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강연을 녹음한 듯한 6개의 Exhibit이 존재하는 가운데, KRS의 사회에 대한 교훈적인 발언이 어김없이 이어지는 [Edutainment]는 이전보다 높은 차트플레이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만큼 대중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라이브 앨범 [Live Hardcore Worldwide]를 거쳐 '92년 발매된 BDP의 5번째 작품 [Sex and Violence]는 KRS 위주의 프로듀싱에서 벗어나 프린스 폴(Prince Paul), 펄 조이(Pal Joey)의 조력으로 이루어진 앨범이었다. [Edutainment]의 "Blackman in Effect" 못잖게 강렬한 "Duck Down"으로 초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하지만, 전작과 마찬가지로 예전만큼 완성도 높은 앨범이라 평가받지는 못했다. 디-나이스, 자말-스키(Jamal-ski), 스카티 모리스(Scottie Morris) 등 기존의 여러 멤버가 빠지고 KRS와 케니 파커를 위시한 소수만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던 5번째 앨범을 끝으로 BDP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며, 이후부터 KRS는 솔로 커리어를 시작한다.
멤버
KRS를 제외한 BDP의 멤버는 꾸준히 바뀌었다. 케이알에스-원, 디제이 스캇 라 록, 디-나이스의 데뷔 시절 포맷은 스캇 라 록의 죽음으로 불가피하게 수정이 가해졌고, 이후 케니 파커, 미즈 멜로디(Ms. Melodie), 스카티 모리스, 하모니(Harmony), 윌리 디(Willie D) 등 많은 멤버가 BDP를 거쳐 갔다. 정확한 해체의 원인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마지막 앨범 [Sex and Violence]의 작업이 이루어지던 시기에 멤버의 교체가 특히 잦았는데 이것이 BDP가 와해되는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루머가 있다.
글을 마치며
'80년대 힙합 뮤지션들의 결과물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례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요즘이기에, '80~'90년대 힙합 음악을 즐겨 듣는 나와 같은 청자가 느끼는 아쉬움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시점에서 BDP의 옛 앨범을 다시 들으니 그야말로 감회가 새롭다. 크루의 해체 과정이 썩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BDP가 만든 일련의 산물, 특히 초기 앨범은 계속해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에, 보다 많은 힙합 리스너가 그들의 존재를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