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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L & Esoteric [Dangerous Connection] (2002)

epmd 2011. 4. 23. 21:42


※ 2005년 웹진 리드머(http://www.rhythmer.net)에 기재한 글.

01. One Six
02. Watch Me
03. Warning
04. Terrorist's Cell
05. Precision
06. Word Association
07. Stalker
08. Speak Now (feat. Vinnie Paz & Apathy)
09. Rules Of Engagement (feat. J-Live & Count Bass D)
10. Riccardi Man
11. Herb
12. What I Mean (feat. Beyonder)
13. Rest In Peace
14. The Way Out

Record Label : Landspeed Records
Released Date : 2002-10-08
Reviewer Rating : ★★★☆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더 힙합 씬에 애정을 갖고 이를 주시하는 리스너들의 머릿속에 美 동부의 보스턴이란 도시는 '실력파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이 득세하여 힙합의 본고장인 뉴욕 못잖게 다양한 힙합퍼들이 공존하는 지역'이라는 공식 아닌 공식이 자리하고 있는 듯하다. 해마다 열리는 보스턴 힙합 어워드만 놓고 보더라도 그곳의 씬이 얼마나 활성화되었는지를 지레 짐작해볼 수 있다.
워낙 기라성 같은 존재들이 많아 특정인(혹은 팀)을 가리켜 'Representin' Boston'이라 말하기는 모호하지만, 오랜 기간 지역의 이름을 빛내고 있는 선수들임엔 틀림없는 세븐엘 앤 에소테릭(7L & Esoteric)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그들의 소포모어 앨범 [Dangerous Connection]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Dangerous Connection

세븐엘(7L)과 에소테릭(Esoteric)은 '90년대 말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Esoteric)와 청취자(7L)의 관계로 서로를 알게 되면서 팀을 결성하였고, 싱글 앨범을 한 데 모은 EP [Speaking Real Words](1999), 정규 앨범 [The Soul Purpose](2001)를 통해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했다. 베이비그랑데(Babygrande) 레이블의 대들보 제다이 마인드 트릭스(Jedi Mind Tricks)를 비롯하여 데미가즈(Demigodz)의 모든 멤버들, 로 프로듀스(Raw Produce)를 위시한 동지역 출신의 선수들, 세븐 헤즈(7 Heads)의 대표 격인 제이-라이브(J-Live)에 이르기까지 언더 씬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여러 뮤지션들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1집 [The Soul Purpose]에는 이처럼 친분이 있는 뮤지션들을 대거 참여시켰는데, 몇몇 트랙에선 두 명의 주인공보다 오히려 게스트들의 화려한 네임 밸류나 퍼포먼스가 부각되어 주객이 전도되는 역효과를 야기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는 많은 이들이 기대를 모았던 1집이 생각 외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이러한 팬들의 아쉬움을 알아차렸는지 그들은 2집 [Dangerous Connection]에선 게스트의 비중을 대폭 줄이고 프로듀싱 면에서도 앨범의 3/4 가량을 세븐엘이 도맡는 등 180도 달라진 모습을 선보였다. 1집 시절 상당수의 곡을 제공했던 바이닐 리애니메이터스(Vinyl Reanimators)와 디제이 스피나(DJ Spinna) 등의 이름은 2집의 앨범 크레딧에선 찾아볼 수 없고, 컷마스타 컷(KutMasta Kurt), 스투프(Stoupe), 그리고 비욘더(Beyonder)가 3~4개의 트랙만을 담당할 뿐 나머지는 모두 세븐엘의 몫이다. 이는 '이제는 우리 이름을 내건 앨범에서만큼은 우리들만의 칼라를 뚜렷하게 어필하겠다.'는 두 주인공의 당찬 의도로 해석된다.

Esoteric's Rapping

턴테이블 리릭으로 훅(Hook)을 처리한다거나 다소 어두운 느낌으로 일관하는 세븐엘의 전형적인 비트가 펼쳐지는 가운데 에소테릭의 랩이 펼쳐진다. 사실 에소테릭 역시 카리스마 넘치는 랩으로 듣는 이를 압도해버리는 모습은 전작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정박 랩의 교본'을 정의하던 모습(예를 들면 1집의 "Verbal Assault"나 "Speaking Real Words" 같은 곡)과 특유의 쏘아붙이기식 랩으로 일관하는 모습이 가져다주는 재미는 오히려 전작을 한 단계 뛰어넘은 듯하다. 초반부의 "Watch Me"를 통해 '궁극의 끝없이 쏘아붙이는 랩'이 무엇인지를 유감없이 보여주면서 첫 트랙 "One Six"를 통해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을 순식간에 극대화시키고, 이어서 보스턴 공항의 비행기를 하이재킹(hijacking) 하고자 준비 중인 테러리스트의 관점에서 랩을 하는 이색적인 주제의 트랙 "Terrorist's Cell"에서는 스투프의 비장한 비트와 짝을 이루기도 한다. 게다가 단순히 살벌함만을 이어가는 게 아니라, "Word Association"과 같은 곡을 통해 유머러스한 리릭도 접할 수 있다. 제목 그대로 특정 단어와 그에 상응하는 연상 단어를 열거하는 이 곡에서는 중간 중간 연예인들의 이름도 거론되는데, 'Tom Cruise - Ray Ban, Elton John - Gay Man', 'Kid Rock - White Trash, Limp Bizkit - Don't Ask'와 같은 가사는 그야말로 폭소를 자아낸다. 또한 앞서 말했듯이 Inspectah Deck 뺨칠 만큼 뛰어난 정박 랩을 구사하는 에소테릭은 후반부에 배치된 "Herb"를 통해 자신의 그러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기도 하는데, 'You're a herb'로 시작하는 매 문장마다 수놓은 라이밍은 차례차례 짚어간다면 말로는 형용하기 힘든 짜릿한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지적할 수밖에 없는 아쉬움

그들 나름대로 심사숙고한 흔적이 보이고, 여전히 불꽃 튀는 에소테릭의 랩을 감상할 수 있지만 세븐엘의 프로듀싱은 그다지 발전이 없다. 어둡고 긴장감 넘치는 비트는 분명 그의 트레이드마크지만 그러한 스타일만으로 일관한다면 청자는 쉽사리 짜증을 느끼기 마련이고, 큰 변화 없이 흘러가는 일정 속도의 BPM 역시 지루함을 유발한다. 앨범의 하이라이트 격인 "Word Association" 이후부터 후반부까지 무언가 텅 빈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오래전 세븐엘은 어느 웹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비슷한 스타일을 지닌 20여개의 비트를 한 앨범에 넣어 100% 만족스러움을 선사할 수 있다'는 식의 발언을 했던 적이 있었다. 정립된 하나의 스타일에 충실한 앨범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양산할 수 있다는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이것은 분명 듣는 이를 위한 배려가 아니다. 게다가 작년 발매된 3집 [DC2 : Bars of Death]에서는 뭔가 달라질 거라 믿었건만 여전히 대체로 비슷비슷한 질감의 샘플과 변화를 감지하기 힘든 일정 루프를 고집하여 허탈함마저 들게 만들었다. 이쯤 되면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릴 것 같은데도 말이다.
결국 이처럼 불완전한 형태의 프로듀서-엠씨의 조합은 과연 앨범 타이틀과 같은 진정한 'Dangerous Connection'이라 말할 수 있는지가 의문스러워질 뿐이다.

풀어야 할 과제

이미 보스턴 언더그라운드 씬의 간과할 수 없는 존재로 자리매김한 세븐엘과 에소테릭이지만, [Dangerous Connection]을 비롯한 일련의 산물들을 하나둘씩 상기하다 보면 그들이 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다는 생각이 든다. 보스턴 출신의 이 두 인물이 가장 최적화된 1 프로듀서 & 1 엠씨 포맷이라 할 수 있는 거장 갱 스타(Gang Starr, Primo & Guru)나 피트 락 앤 씨엘 스무스(Pete Rock & CL Smooth)처럼 모두가 존경할만한 뮤지션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운드스케이프를 바탕에 두고 청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해야 하는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처럼 결점이 쉽게 드러나면서도 매 앨범마다 하나둘씩 눈에 띄게 완벽한 곡 - 본 작을 예로 들자면 세븐엘의 박진감 넘치는 비트와 에소테릭의 타이트한 랩 뿐 아니라 고스트페이스(Ghostface)의 목소리를 활용한 턴테이블 리릭까지 첨가되어 흠잡을 데가 없는 "Watch Me"와 같은 트랙 - 이 포진되어 있는 탓인지 그들에 대한 애정을 저버리기도 참 힘들다. 그래, 그렇다면 결국 인내를 갖고 차기작에 또 한 번의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는 없겠다. 제발 부탁인데 4번째 정규 앨범에선 '아직도 EP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말이 더 이상 나돌지 않게끔 확실한 한 방을 보여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