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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ceptionists [Black Dialogue] (2005)

epmd 2011. 4. 23. 21:56


※ 2005년 웹진 리드머(http://www.rhythmer.net)에 기재한 글.

01. Let's Move
02. People 4 Prez
03. Blo
04. Memorial Day
05. Love Letters
06. Black Dialogue
07. Frame Rupture
08. What Have We Got To Lose?!?
09. Party Hard (feat. Guru & CamuTao)
10. Career Finders (feat. Humpty Hump aka Shock G)
11. 5 O'Clock (feat. Phonte of Little Brother)
12. Breath In The Sun

Record Label : Definitive Jux
Released Date : 2005-03-22
Reviewer Rating : ★★★☆

Introduction - Who are the Perceptionists?

보스턴의 힙합 씬을 논하는 데 있어 아크로바틱(Akrobatik)과 미스터 리프(Mr. Lif)는 빼놓을 수는 없는 선수들이다. 아크로바틱은 "Internet MC's"라는 곡으로 화제를 모으며 성공적인 데뷔를 치른 이래 항상 박력 넘치는 랩으로 이목을 집중시켜 왔고, 정규 앨범 [Balance]를 비롯해 많은 이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을 병행하며 폭넓은 활동을 진행하고 있는 엠씨이다. 미스터 리프도 마찬가지로 보스턴을 대표할만한 정상급 엠씨로서 그 명성이 자자한데, 그는 데피티니브 젹스(Definitive Jux) 레이블의 일원이 되기 이전부터 훌륭한 리릭시스트로 평가받아오던 래퍼였다. 이들 두 명의 베테랑 엠씨와 보스턴 언더그라운드의 프로듀서 겸 디제이 팩츠 원(Fakts One)까지 가세한 퍼셉셔니스츠(Perceptionists: 굳이 우리말로 해석하자면 '자각하는 이들'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라는 3인조 프로젝트가 구상되고 그것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은 약 2년 전부터였다. 여러 힙합 웹진의 인터뷰를 통해 당찬 행보를 알린 그들은 2004년 믹스테입 형태의 앨범 [The Razor]를 내놓으며 퍼셉셔니스츠의 존재를 천명하였다. 3총사의 합작과 멤버 개개인의 솔로 트랙 리믹스 등을 두루 섞어 만든 이 앨범을 통해 2005년 데피니티브 젹스 레이블에서 발매될 정식 데뷔 앨범의 발매가 임박했음을 암시하였고, 당연히 팬들의 기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데피니티브 젹스는 그러한 기대감을 더욱 증폭시키고자 발매를 두 달 여 앞둔 금년 초부터 레이블 홈페이지 첫 화면에 퍼셉셔니스츠의 데뷔 앨범을 대문짝만하게 내걸고 선주문을 받는 등 대대적인 홍보를 펼쳤고, 2005년 3월 마침내 그 결과물이 공개되었다. 그럼 이제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을 학수고대하게 만들었던 퍼셉셔니스츠의 정규 앨범을 파헤쳐 보자.

Black Dialogue : About Lyrics

사실 이전부터 미스터 리프와 아크로바틱의 명성을 알고 둘의 솔로 앨범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이들이 힘을 합쳤다는 사실만으로도 환호성을 지를 것이다. 또한, 본 작에서 두 선수가 토해내는 랩은 기대치를 충족시키고도 남을 만큼 만족스럽다. 아크로바틱의 날카로운 랩과 다소곳한 목소리로 읊조리는 미스터 리프의 랩은 각자의 벌스(verse)에서, 혹은 순간순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가운데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그러다 보니 앨범을 듣다보면 자연스레 보스턴 슈퍼 엠씨 콤비의 활약상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랩에 빠져들다 보면 크나큰 특징 하나를 쉽게 찾아낼 수 있는데, 그것은 '주제의 다양함' 이다. 둘은 각각 한 벌스를 나누어 가지며 닭살 돋는 사랑 얘기를 늘어놓기도 하고("Love Letters"), 훵키한 리듬 속에서 겉멋에 치중하는 가짜 엠씨들을 비꼬기도 하며("Career Finders"), 업무를 마친 평일 오후 5시 이후부턴 제발 방구석에 눌러앉아 TV만 보지 말고 밖으로 뛰쳐나가 자유를 만끽하라고 외치기도 한다("5 O'Clock"). 또한 "Memorial Day"에서는 'Where are the weapons of mass-destruction? We've been looking for months and we ain't found nothing. Please Mr. President tell us something. We knew from the beginning that your ass was bluffing!' (대량 살상무기는 어디 있는 걸까? 우린 수개월동안 찾아 헤맸고 아무 것도 없었어. 대통령 양반아 뭐라고 말 좀 해봐. 우린 처음부터 네가 허풍선이인 걸 알고 있었어.)"이라 말하는 훅(Hook)을 통해 강렬한 반전(反戰) 메시지를 설파하는 등 정치적인 가사도 아우르고 있다. 이외에 다방면에 걸쳐 깊숙이 뿌리내린 흑인 문화를 찬양하며 케이알에스원(KRS-One), 척 디(Chuck D),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등 선배 뮤지션들에 대한 존경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Black Dialogue", 서정적 분위기 속에서 각각 보스턴에서의 삶(아크로바틱)과 한 여자와의 사랑 이야기(미스터 리프)를 자아낸 마지막 트랙 "Breathe in the Sun"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가 뒤섞여 있다.

Black Dialogue : About Beats

그렇다면 이처럼 다양한 얘깃거리를 뒷받침하는 비트는 어떨까? 퍼셉셔니스츠 3총사의 일원인 팩츠 원은 세 곡의 프로듀싱과 앨범 전반에 걸쳐 컷팅을 맡았고, 나머지 곡들에선 엘-피(El-P)와 윌리 에반스(Willie Evans), 그리고 데피니티브 젹스의 신진 프로듀서 싸이러스 더 그레이트(Cyrus the Great) 등이 프로듀서로 활약했다. 2004년 미비한 활동으로 팬들을 다소 실망시켰던 엘-피는 본 작을 계기로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하려는지 그의 손길이 스쳐간 곡들은 유난히 귀에 감기는데, 특히나 "Blo"는 앨범의 베스트 트랙이라 봐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하다. "Blo" 외에도 에릭 서먼(Erick Sermon)의 랩을 턴테이블 리릭으로 활용한 "Frame Rupture"와 "People 4 Prez" 등 그가 만들어낸 비트는 여전히 실험적이고 비장함이 살아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아직 많은 이들에게 낯설게 느껴질 법한 프로듀서 싸이러스 더 그레이트는 "Memorial Day"와 "What Have We Got To Lose?!?" 두 곡을 통해 썩 괜찮은 반응을 얻어냈고, 윌리 에반스는 "Love Letters"와 "Breathe in the Sun"에서 조력자로 활약하며 다양한 주제에 걸맞은 폭넓은 사운드의 제공에 있어 크나큰 역할을 해냈다.
사실 누구보다도 팩츠 원이 가장 돋보여야 할 이 앨범에서 맹위를 떨치는 이가 오히려 엘-피라는 점이 다소 거치적거리긴 하지만 다양한 주제에 어울리는 폭넓은 비트를 포용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여러 프로듀서를 섭외한 것이기에 결코 큰 문제로 작용하진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어설픈 Club Shit'을 들려주는 카뮤 타오(Camu Tao)의 "Party Hard"와 같은 곡에 있다(비단 어정쩡한 비트뿐만 아니라, 곡의 가사는 제목 그대로 파티를 즐기자는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어딘가가 불편한 상태에서 랩을 하고 있는 것 같은 미스터 리프와 뜬금없이 튀어나와 모노톤으로 읊조리면서 찬물을 한 번 더 끼얹는 원조 보스턴 형님 구루(Guru)의 모습도 분위기와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차라리 이런 곡을 과감하게 빼고 -중복을 감수하고서라도- 믹스테입 앨범 [The Razor]에 수록된 양질의 트랙들을 수록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Outro

앨범은 두 랩퍼가 전달하는 '다양한 주제'를 통해 분명 즐거움을 준다. 특정 내용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얘깃거리를 이렇게 짧은 러닝타임에 꾹꾹 눌러 담았다는 것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두 엠씨가 주거니 받거니 랩을 하는 모습은 레드맨 & 메소드맨(Redman & Method Man), 블랙 스타(Black Star) 등의 명콤비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멋지다.
하지만 앞서 말했던 "Party Hard"와 같은 트랙은 그저 주제의 다양함을 뒷받침하기 위해 다소 억지로 끌어들여 만든 곡으로만 보인다는 점과 팬들의 기대만큼 길지 못한 러닝타임이 못내 아쉽다. 물론 12트랙 41분의 짧은 시간 안에서 스킷(skit) 없이 풀타임 트랙만으로 구성하여 '짧고 굵은 앨범'을 콘셉트로 정하고 그것에 충실했음이 눈에 훤히 보이지만, 기왕 그러한 콘셉트를 정했다면 좀 더 욕심을 내어 몇 곡을 더 수록해도 좋았을 것 같다. 시작부터 거창했던 보스턴 출신 삼총사의 프로젝트는 랩 가사의 다양함과 그에 상응하는 여러 프로듀서들의 조력으로 즐거움을 안겨다 주었지만, 동시에 이와 같은 아쉬움도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