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Feature
Cut Chemist 내한 공연 후기 (2007년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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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24. 17:35
※ 2007년 웹진 리드머(http://www.rhythmer.net)에 작성한 글.
공휴일을 하루 앞둔 8월 14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식사를 간단하게 해결한 후 광나루 멜론 악스 홀을 향했다. 정상급 뮤지션의 내한은 언제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터라, 지하철을 3번이나 갈아타는 번거로움도 컷 케미스트(Cut Chemist)의 스킬을 보게 될 거라는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진 못했다. 더군다나 나는 작년 이맘때쯤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디제이 섀도(DJ Shadow)의 내한공연을 보지 못한 입장이기에 이번 공연만큼은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저녁 8시 40분 경 도착한 공연장 바깥에는 예상대로 그다지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진 않았지만, 컷 케미스트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한결같아 보였다. 9시부터 실내 출입이 이루어졌고, 그로부터 약 50여 분이 지난 후에야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Cut Chemist vs Mat The Alien'이란 팜플렛 문구를 보고 혹시 디제이 섀도와 컷 케미스트의 'Freeze'(2000)처럼 두 명의 디제이가 무대에서 협연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해봤지만, 예상 외로 스테이지엔 1명의 DJ만이 설 수 있는 공간이 주어져 있었다.
먼저 게스트들이 무대를 달구었다. 디제이 코난(DJ Conan)과 스무드(Smood)의 2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믹스 쇼가 진행됐고, 자정이 가까워지자 맷 디 에일리언(Mat The Alien)이 등장했다. 가끔씩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만한 곡도 들려주는 가운데 1시간이 넘는 마라톤 믹스가 이어졌다.
문제는 시간이 너무 지체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새벽 1시가 되어도 이 날의 주인공 컷 케미스트는 도통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처럼 컷 케미스트를 기다리다 지쳐 기진맥진하는 사람이 절반이고, 공연 자체를 즐기며 춤 삼매경에 빠져 있는 이들이 절반쯤 되어 보였다. 공연 전 잠을 청했거나 박지성에 버금가는 체력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자정까지 서 있으면 몸도 마음도 한없이 지쳐가는 법이기에, 졸음이 물밀 듯이 쏟아졌지만 그런 와중에도 맷 디 에일리언은 특유의 근성(?)을 잃지 않고 저글링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러다 새벽 2시가 되면 바닥에 쓰러지는 건 아닌가 하고 자포자기하던 무렵, 1시 반쯤 되었을 때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컷 케미스트가 LP 가방을 들고 무대에 올라왔다. 지쳐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눈을 초롱초롱 뜨면서 열광했고, 드디어 본격적인 쇼가 시작됐다. 컷 케미스트는 믹싱 도중에 수시로 마이크워크를 하면서 관중들의 환호를 유도하고, 또한 준비한 수많은 LP의 턴테이블 리릭 대부분을 립싱크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동안 LP판 하나하나를 무대에서 얼마나 많이 사용했는지 보여주는 셈이 되었다. 초절기교가 난무하는 화려함보다는 퍼포먼스 자체에 의미를 두는 그이지만, 팬 서비스 차원에서 DMC 배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작 -예를 들면 팔을 등 뒤로 옮겨 반대쪽 턴테이블을 터치하는 스킬을 반복하는 것- 도 한 차례 보여줬고, LP를 공중에 던져 등 뒤에 내민 손으로 잡는 제스처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깔끔한 무대 매너를 시종일관 유지했다.
이후엔 "Storm", "The Garden", "What the Attitude" 등 작년에 발매된 솔로 앨범 [The Audience's Listening]에 수록된 여러 곡을 믹스하며 이목을 집중시키더니, 갑자기 마이크를 잡고 스테이지에서 내려와 관객과의 토크를 시작했다. 3개국에서 뽑은 3명의 관객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이름이 무엇인지를 물었는데, 몇 초 후 무대에 복귀한 그를 보면서 단순히 이야기만을 나눈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관객과의 대화를 즉석에서 녹음하고 있던 것이었고, 그것을 소스 삼아 스크래칭을 하는 신선함을 선사했다. 모두들 생각지도 못한 기발함에 놀란 가운데 분위기는 최고조로 치솟았다. 헌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몇 분 후엔 블랙칼리셔스(Blackcalicious)의 "Alphabet Aerobics"와 "Chemical Calisthenics" 콤보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컷 케미스트의 스크래칭이 기프트 오브 갭(Gift of Gab)의 랩을 대신하는 기이함에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열광의 무대가 슬슬 막바지로 향하며 그는 "Jayou", "Quality Control" 등 쥬라식 파이브(Jurassic 5) 시절의 명곡들을 앙코르 트랙으로 장식하며 공연을 끝냈다. 감사의 인사말에 이어 계단에 걸터앉아 관객 모두에게 사인해주는 친절한 모습은 마치 이웃집에 사는 친한 형을 보는 것 같았다.
모처럼만에 멋진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이 날의 무대과 필적할만한 디제이의 공연을 국내에서 찾아보는 건 당분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공연이었다. 즉석 녹음과 그에 이어지는 무대를 8월 14일 공연의 절정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개인적으로는 "Chemical Calisthenics"에서 기프트 오브 갭의 랩 대신 입혀진 스크래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귀가 후 쥬라식 파이브와 블랙칼리셔스의 앨범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컷 케미스트의 푸근한 얼굴이 오버랩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끝으로 그리 많지 않은 관객 수와는 대조적으로 최고의 무대 매너를 보여준 컷 케미스트에게 감사하며 글을 마친다.
공휴일을 하루 앞둔 8월 14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식사를 간단하게 해결한 후 광나루 멜론 악스 홀을 향했다. 정상급 뮤지션의 내한은 언제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터라, 지하철을 3번이나 갈아타는 번거로움도 컷 케미스트(Cut Chemist)의 스킬을 보게 될 거라는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진 못했다. 더군다나 나는 작년 이맘때쯤 같은 장소에서 열렸던 디제이 섀도(DJ Shadow)의 내한공연을 보지 못한 입장이기에 이번 공연만큼은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저녁 8시 40분 경 도착한 공연장 바깥에는 예상대로 그다지 많은 이들이 기다리고 있진 않았지만, 컷 케미스트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한결같아 보였다. 9시부터 실내 출입이 이루어졌고, 그로부터 약 50여 분이 지난 후에야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Cut Chemist vs Mat The Alien'이란 팜플렛 문구를 보고 혹시 디제이 섀도와 컷 케미스트의 'Freeze'(2000)처럼 두 명의 디제이가 무대에서 협연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해봤지만, 예상 외로 스테이지엔 1명의 DJ만이 설 수 있는 공간이 주어져 있었다.
먼저 게스트들이 무대를 달구었다. 디제이 코난(DJ Conan)과 스무드(Smood)의 2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믹스 쇼가 진행됐고, 자정이 가까워지자 맷 디 에일리언(Mat The Alien)이 등장했다. 가끔씩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만한 곡도 들려주는 가운데 1시간이 넘는 마라톤 믹스가 이어졌다.
문제는 시간이 너무 지체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새벽 1시가 되어도 이 날의 주인공 컷 케미스트는 도통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처럼 컷 케미스트를 기다리다 지쳐 기진맥진하는 사람이 절반이고, 공연 자체를 즐기며 춤 삼매경에 빠져 있는 이들이 절반쯤 되어 보였다. 공연 전 잠을 청했거나 박지성에 버금가는 체력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자정까지 서 있으면 몸도 마음도 한없이 지쳐가는 법이기에, 졸음이 물밀 듯이 쏟아졌지만 그런 와중에도 맷 디 에일리언은 특유의 근성(?)을 잃지 않고 저글링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러다 새벽 2시가 되면 바닥에 쓰러지는 건 아닌가 하고 자포자기하던 무렵, 1시 반쯤 되었을 때 그토록 학수고대하던 컷 케미스트가 LP 가방을 들고 무대에 올라왔다. 지쳐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눈을 초롱초롱 뜨면서 열광했고, 드디어 본격적인 쇼가 시작됐다. 컷 케미스트는 믹싱 도중에 수시로 마이크워크를 하면서 관중들의 환호를 유도하고, 또한 준비한 수많은 LP의 턴테이블 리릭 대부분을 립싱크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동안 LP판 하나하나를 무대에서 얼마나 많이 사용했는지 보여주는 셈이 되었다. 초절기교가 난무하는 화려함보다는 퍼포먼스 자체에 의미를 두는 그이지만, 팬 서비스 차원에서 DMC 배틀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작 -예를 들면 팔을 등 뒤로 옮겨 반대쪽 턴테이블을 터치하는 스킬을 반복하는 것- 도 한 차례 보여줬고, LP를 공중에 던져 등 뒤에 내민 손으로 잡는 제스처로 관객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깔끔한 무대 매너를 시종일관 유지했다.
이후엔 "Storm", "The Garden", "What the Attitude" 등 작년에 발매된 솔로 앨범 [The Audience's Listening]에 수록된 여러 곡을 믹스하며 이목을 집중시키더니, 갑자기 마이크를 잡고 스테이지에서 내려와 관객과의 토크를 시작했다. 3개국에서 뽑은 3명의 관객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이름이 무엇인지를 물었는데, 몇 초 후 무대에 복귀한 그를 보면서 단순히 이야기만을 나눈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관객과의 대화를 즉석에서 녹음하고 있던 것이었고, 그것을 소스 삼아 스크래칭을 하는 신선함을 선사했다. 모두들 생각지도 못한 기발함에 놀란 가운데 분위기는 최고조로 치솟았다. 헌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몇 분 후엔 블랙칼리셔스(Blackcalicious)의 "Alphabet Aerobics"와 "Chemical Calisthenics" 콤보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컷 케미스트의 스크래칭이 기프트 오브 갭(Gift of Gab)의 랩을 대신하는 기이함에 또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열광의 무대가 슬슬 막바지로 향하며 그는 "Jayou", "Quality Control" 등 쥬라식 파이브(Jurassic 5) 시절의 명곡들을 앙코르 트랙으로 장식하며 공연을 끝냈다. 감사의 인사말에 이어 계단에 걸터앉아 관객 모두에게 사인해주는 친절한 모습은 마치 이웃집에 사는 친한 형을 보는 것 같았다.
모처럼만에 멋진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이 날의 무대과 필적할만한 디제이의 공연을 국내에서 찾아보는 건 당분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공연이었다. 즉석 녹음과 그에 이어지는 무대를 8월 14일 공연의 절정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개인적으로는 "Chemical Calisthenics"에서 기프트 오브 갭의 랩 대신 입혀진 스크래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귀가 후 쥬라식 파이브와 블랙칼리셔스의 앨범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컷 케미스트의 푸근한 얼굴이 오버랩 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끝으로 그리 많지 않은 관객 수와는 대조적으로 최고의 무대 매너를 보여준 컷 케미스트에게 감사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