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 웹진 리드머(http://www.rhythmer.net)에 기재한 글.

01. Keeper Of The Seven Keys
02. Eye Is The King
03. Impaled Nazarene
04. Children Of God
05. Blood Meridian
06. Oath Of The Goat
07. King Diamond
08. The Vice Of Killing (feat. Reef The Lost Cauze, Sabac Red)
09. Devil's Rebels (feat. Crypt the Warchild)
10. Age Of Quarrel
11. Metal In Your Mouth (feat. Q-Unique, Slaine)
12. Terror Network
13. Leviathan
14. The Crown Is Mine
15. Splatterfest
16. The Final Call

Record Label : Enemy Soil/Uncle Howie
Released Date : 2011-04-05
Reviewer Rating : ★★★

일 빌(Ill Bill)과 비니 패즈(Vinnie Paz)는 언더그라운드 힙합 씬에서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는 '거물'로 통한다. 일 빌은 논 픽션(Non Phixion, 현재 이 팀명은 정식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과 라 코카 노스트라(La Coka Nostra)의 주축이고, 비니 패즈는 제다이 마인드 트릭스(Jedi Mind Tricks)의 MC이자 아미 오브 더 패로우(Army of the Pharaohs) 패거리의 리더이다. 둘의 공동 작업이 처음으로 이루어진 것은 2006년, 제다이 마인드 트릭스의 앨범에 수록된 싱글 "Heavy Metal Kings"를 통해서였다. 위에 언급한 각 진영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두 래퍼의 합작품은 익숙한 샘플을 활용한 웅장한 비트와 그에 걸맞은 랩으로 리드 싱글의 역할을 해냈고, 결국, [Servants in Heaven, Kings in Hell]의 대표곡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후, 각자의 위치에서 왕성하게 움직이던 두 간판스타가 다시금 의기투합하여 합작 앨범을 만들기로 했고, 싱글 "Heavy Metal Kings"를 발매한지 5년이 지난 2011년, 영광을 함께한 동명의 앨범으로 나타났다.

프로젝트 앨범 [Heavy Metal Kings]에서 그들은 기존부터 갖고 있었던 이미지를 고수한다. 테러(terror), 살인(murder) 등 폭력적인 내용의 가사로 중무장하여 전투에 임하는 군인을 방불케 한다. 여기에 빠른 BPM의 비트까지 무차별하게 더해져 이를 접하는 혹자는 현기증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오랫동안 두 래퍼를 바라본 청자라면 이러한 분위기가 그리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비니 패즈의 정직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라이밍과 걸걸한 목소리, 그리고 일 빌의 속사포 같은 랩이 괜찮은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Kill Devil Hills] 앨범에서 일 빌과 함께했던 디제이 먹스(DJ Muggs), 비니 패즈의 레이블에 속해 있는 씨-랜스(C-Lance)를 비롯한 두 래퍼의 측근들이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지독하다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만큼 폭력적이고 자기 과시적인 가사 속에서 앨범을 빛내는 트랙이 몇몇 존재한다. "Blood Meridian"은 비트와 가사, 뮤직비디오까지 모두 한 편의 호러 무비를 연상케 하며, "King Diamond"와 "The Vice of Killing"으로 이어지는 중반부가 특히 압권이다. "The Vice of Killing"에서 캐치할 수 있는 일 빌의 숨 쉴 틈 없는 랩은 그가 어떤 면에서 인정받고 있느냐는 물음에 대한 모범답안이라 봐도 무리가 없다. 큐-유니크(Q-Unique), 리프 더 로스트 커즈(Reef the Lost Cauze) 등 주인공 못잖은 실력을 자랑하는 게스트들의 적절한 지원도 놓치기 아까운 대목이다. 주객전도의 우를 범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들이 해야 할 몫을 해내는 이들의 모습은 정말 멋지다.

아쉬운 것은 극도로 한정된 스타일과 궁합이 맞지 않는 스크래칭이다. 우선 이렇게 하나의 큰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 가사와 비트를 취한 앨범은 분위기를 바꿀만한 전환점이 이따금씩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Heavy Metal Kings]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앨범에 가깝다. 듣는 이가 지치기 쉬운 하드코어 힙합 앨범이라면, 전환점의 필요성이 더더욱 클 터인데, "Children of God" 정도의 트랙을 제외하고는 그러한 장치가 없다. 중간 중간에 그 흔한 인터루드(interlude) 트랙이라도 넣어 호흡을 고를 수 있는 여유를 두었다면, 좀 더 괜찮은 구성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또한, "The Crown Is Mine" 등 몇몇 트랙에서 접하게 되는 스크래칭이 비트에 파묻히는 경향이 있는데, 이 역시 결점으로 남는다.

우리는 괜찮은 투 MC 포맷을 재확인하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앨범은 완벽하지 못하다. 단언컨대, 그들의 전작-[Kill Devil Hills]와 [Season of the Assassin]-의 완성도에 미치지 못하는 앨범이다. 다시 말하자면, [Heavy Metal Kings]는 테러리스트를 자청하는 두 래퍼의 랩이 과연 타이틀처럼 그들을 언더그라운드의 왕으로 군림케 하는 무기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확고한 답변이 되기에는 조금 부족한 앨범이라는 것이다. 물론, 두 거물의 실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말이다. 양대 진영의 대표 격인 인물 간의 프로젝트라는 것만으로도 언더그라운드 마니아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하지만, [Heavy Metal Kings]는 청자를 쉽게 지치게 만드는 앨범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