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이민경 저
이 책은 작가가 여성의 입장에서, 멸시와 조롱을 당했거나 불쾌한 언변을 들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대처법을 지침서화한 책이다. 작가는 2016년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이 책을 집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을 수차례 서술하고 있으며, 이 사건을 여성 혐오와 직결시킨다.
이민경 작가와 독자인 나의 견해는 시작부터 어긋난다. 나는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이 특정 성별에 대한 혐오가 주된 원인이었다고 단정 짓는 것부터 잘못된 판단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건은 여성에 대한 혐오가 결정적 원인이었다고 결론이 나지도 않았고, 범인이 여성 혐오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고 단정 지을 근거도 부족하다.
작가의 집필 계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오류와 섣부른 판단이 너무 많다는 점이 책의 가장 큰 맹점이다. 이 작가는 '직관'을 '진리'로 수차례 단정 짓는다. 직관이 아무리 여러 개 모여도 그것이 100% 진리가 되는 건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기본적인 태도부터 잘못 갖춘 상태에서 단언하는 경우가 흔하다. 아래와 같은 문단을 예로 들 수 있다.
48 page - 상대에게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자유'란 없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당신이 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성이 느끼는 부당함을 구구절절 이야기해도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남성의 입지가 예전 같지 않다며 하소연을 해도, 여성의 지위가 남성과 동등해졌다는 뜻과는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이 단락에서 '상대'는 남성을 의미한다. 작가는 남성에게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자유는 없다고 말하는데, 동조할 수 없는 주장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차별의 존재 여부를 주장할 자유는 누구나 있기 때문이다. 남성이 느끼는 부당함을 이야기해도 소용없다는 말 또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남성은 여성이 겪은 차별을 느낄 수 없는(불가능한) 존재이므로 애초에 논할 자격이 없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 선을 긋는데, 이는 아예 남성과 대화할 일말의 창구조차 닫아버리겠다는 의미이다. 성(젠더)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할 수 있는 대화의 창구를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남성이라도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스스로 기득권을 누리고 있음을 인지하고,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에도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에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니 이게 무슨 자다 일어나 봉창 두드릴 소리인가.
사람이 주장을 펼칠 때는 합당한 이유나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민경 작가는 이런 기본적인 태도조차 망각하고 있다. 책 후반부에 있는 'FAQ'에 이르면 더 난감해진다. 이 단락 초반부에서 작가는 누구에게 입증받고 싶어 쓴 글이 아니니 주장에 정확한 근거가 없다는 말에 굳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작가가 집필한 책이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독자인 나도 무조건 정량화된 수치를 기반으로 하는 근거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합리성이 있는 주장을 해야 믿음이 가지, 논리가 아예 통하지도 않는 이야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니 믿음이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에 크게 노하여 흥분한 상태로 글을 쓴 흔적이 많이 보이는데 이 또한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급조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조금 더 평온한 상태에서 글을 썼으면 이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이런 책이 화제를 모으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공감하기 어려운 책보다는 벨 훅스의 책을 읽는 편이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