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 Posted by epmd 2017. 11. 9. 11:15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 이민경 저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이민경 저

 

이 책은 작가가 여성의 입장에서, 멸시와 조롱을 당했거나 불쾌한 언변을 들었을 때 대응할 수 있는 대처법을 지침서화한 책이다. 작가는 2016년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이 책을 집필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을 수차례 서술하고 있으며, 이 사건을 여성 혐오와 직결시킨다.

 

이민경 작가와 독자인 나의 견해는 시작부터 어긋난다. 나는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이 특정 성별에 대한 혐오가 주된 원인이었다고 단정 짓는 것부터 잘못된 판단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건은 여성에 대한 혐오가 결정적 원인이었다고 결론이 나지도 않았고, 범인이 여성 혐오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고 단정 지을 근거도 부족하다.

 

작가의 집필 계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오류와 섣부른 판단이 너무 많다는 점이 책의 가장 큰 맹점이다. 이 작가는 '직관'을 '진리'로 수차례 단정 짓는다. 직관이 아무리 여러 개 모여도 그것이 100% 진리가 되는 건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기본적인 태도부터 잘못 갖춘 상태에서 단언하는 경우가 흔하다. 아래와 같은 문단을 예로 들 수 있다.

 

48 page - 상대에게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자유'란 없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당신이 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성이 느끼는 부당함을 구구절절 이야기해도 소용없습니다. 아무리 남성의 입지가 예전 같지 않다며 하소연을 해도, 여성의 지위가 남성과 동등해졌다는 뜻과는 별개이기 때문입니다.

 

이 단락에서 '상대'는 남성을 의미한다. 작가는 남성에게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자유는 없다고 말하는데, 동조할 수 없는 주장이다. 남녀를 막론하고 차별의 존재 여부를 주장할 자유는 누구나 있기 때문이다. 남성이 느끼는 부당함을 이야기해도 소용없다는 말 또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심지어 남성은 여성이 겪은 차별을 느낄 수 없는(불가능한) 존재이므로 애초에 논할 자격이 없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 선을 긋는데, 이는 아예 남성과 대화할 일말의 창구조차 닫아버리겠다는 의미이다. 성(젠더)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토론할 수 있는 대화의 창구를 원천봉쇄하겠다는 것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남성이라도 조금만 관심을 가졌다면 스스로 기득권을 누리고 있음을 인지하고,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에도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남성은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에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니 이게 무슨 자다 일어나 봉창 두드릴 소리인가.

 

사람이 주장을 펼칠 때는 합당한 이유나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이민경 작가는 이런 기본적인 태도조차 망각하고 있다. 책 후반부에 있는 'FAQ'에 이르면 더 난감해진다. 이 단락 초반부에서 작가는 누구에게 입증받고 싶어 쓴 글이 아니니 주장에 정확한 근거가 없다는 말에 굳이 대응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작가가 집필한 책이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고백하는 것과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독자인 나도 무조건 정량화된 수치를 기반으로 하는 근거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합리성이 있는 주장을 해야 믿음이 가지, 논리가 아예 통하지도 않는 이야기를 수십 차례 반복하니 믿음이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

 

강남 묻지마 살인사건에 크게 노하여 흥분한 상태로 글을 쓴 흔적이 많이 보이는데 이 또한 아쉬운 건 마찬가지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급조한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조금 더 평온한 상태에서 글을 썼으면 이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이런 책이 화제를 모으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공감하기 어려운 책보다는 벨 훅스의 책을 읽는 편이 낫다.

 

팟캐스트 [이박사와 이작가의 이이제이]로 유명한 이동형 작가와 지승호 인터뷰어가 함께 쓴 인터뷰 형식의 책이다.

 

이 책은 장점이 매우 뚜렷하다. 인터뷰를 기록집이기 때문에 독자가 대화하듯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동형 작가가 전하고 싶은 말을 늘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름지기 작가는 글을 어렵게 쓰면 안 된다고 하는 이 작가의 사견이 한 몫을 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모르고 있었던 사실을 알게 해주거나, 어렴풋이 기억하던 과거의 일을 다시금 뚜렷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반기문이 어떻게 쪼그라들었는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는 챕터가 딱 그런 사례이다.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정치인에 대한 솔직한 평가도 맘에 든다. '정치 오타쿠 이작가의 직설 혹은 독설'이라는 부제에 걸맞은 직설적 표현이 많은데, 무엇보다도 이 점에 큰 호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동형 작가의 답변은 대체로 '~인 것 같아요', '~일 수도 있어요'라는 표현보다는 '~때문에 ~된 겁니다', 'A는 B입니다'라는 표현이 더 많다. 어떠한 사안에 대해 모호한 주장은 드물고, 충분한 근거를 바탕으로 시원시원한 주장을 하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 답답함을 느낄 틈이 없다.

 

반면에, 총 4개의 영역에 수록된 작은 이야기들의 구분 기준이 모호하다는 단점도 있다. 이것이 독서에 큰 영향을 줄 정도로 치명적인 단점은 아니다. 그렇지만, 작가와 인터뷰어가 하고 싶은 말들의 주제가 산발적이어서 어떤 이야기가 어떤 영역에 포함되어 있는지를 복기하기가 어렵다. 2장 '정치 오타쿠의 정치 과외'와 3장 '우리가 무관심할 때 괴물은 깨어난다'에 속한 다수의 챕터가 그 대상이다. 글의 내용과 시원시원한 발언은 좋지만, 했던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경우도 있고 구분하기 모호한 주제의 챕터도 있다. 그래서 조금 더 명확한 구분점을 갖고 인터뷰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흥미로운 책이라는 사실은 확실하다. 가장 재미있는 챕터는 '주요 정치인 30자평'이다. 제목만 30자평이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정치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심상정에 대해서는 후배들을 위해서 자리를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평하고, 안철수는 정치 DNA가 없는 사람인데 정치를 왜 하는지 의문이라고 평가하며, 박지원은 모든 것을 정치 공학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인데 그런 정치는 이제 끝났다고 직설적인 평을 한다. 다른 사람보다도 이 세 사람에 대한 평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웃었다. 크게 공감하는 평이기 때문이다.

 

부담 없이 읽고, 나중에 생각날 때마다 발췌해서 또 읽으면 좋을 책이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의 최종여부를 결정하는 격동의 시기, 아울러 차기 대선까지 생각해야 하는 시기에 발맞춰 발간한 책이다. 인터뷰 방식으로 지금까지 조금만 알고 있거나 전혀 모르고 있었던 대통령 후보 문재인의 생각에 대하여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책은 크게 6개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기억
사람
광장
약속
행복
새로운 대한민국

함경도에서 피난을 온 아버지, 그리고 문 후보의 학창시절과 군복무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억' 파트는 그의 유년시절부터 20대까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파트이다. 차기 국정 운영에 대한 의견은 '약속'과 '새로운 대한민국' 파트에서 집중적으로 논한다. 사드(THAAD) 배치 문제, 북핵 문제, 무기 수입 + 방산비리, 검찰 + 경찰 + 언론 개혁, 청년실업과 교육 불평등, 지진과 원자력발전소 문제 등, 국가의 수장이 된다면 국가를 어떤 식으로 운영할지에 대한 자세한 답변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 5천만 국민 중 한 사람으로서, 크게 공감하고 지지하는 의견도 있는가 하면, 공감하지 않는 의견도 있다. 예를 들면, 5년 단임제보다는 4년 중임제를 선호한다는 문 후보의 의견에 나도 동의한다. 개헌을 향한 의지와 방식도 전적으로 찬성한다.

문 후보가 매사에 진지하게 답하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의 계획에 100% 찬성하는 건 아니다. 책을 통해서 가끔은 실현 가능성이 낮은 방안을 제시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안건에 대해서는 실현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바탕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있음이 훤히 보인다. 책을 통해 정의 구현이라는 목표를 향한 그의 '절실함'과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 차기 대권 후보의 의지를 이 책처럼 인터뷰 방식으로 알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과 황교안 국무총리의 차기 국정 운영 방안도 이렇게 활자 형태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네거티브 공세는 정말 지겹다. 대권 후보들의 국가 운영 안건에 대한 의견을 냉정하게 비교하면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이야말로 유권자가 가져야 할 가장 바람직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Book | Posted by epmd 2017. 1. 16. 12:18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 저

유시민 작가가 '영업기밀'이라고 말한 자신의 글쓰기 비법을 고스란히 풀어 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내가 고쳐야 하는 태도가 너무나 많음을 깨닫고 민망함을 호소하게 된다. 2년 전에 읽고 최근에 다시 한 번 읽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부끄러운 건 마찬가지다.


회사원 신분으로 7년 반 동안 생활하면서, 직원 대다수는 글쓰기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맞춤법을 무시한 이메일을 주고 받는 일이 예사였고, 주어와 술어의 관계가 맞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이런 현실에 한탄하는 일이 많았지만, 책을 읽을 때에는 이러한 맹점은 잠시 뒤로 미루고, 다른 점에 주목해 보았다. '못난 글을 피하는 법'이라는 챕터가 안겨주는 교훈이 크다. 중국 글자의 오남용, 만연하는 일본어식 글쓰기와 서양식 글쓰기, 복문과 단문 사용 등 되짚어봐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


작가는 복문보다 단문을 많이 쓰기를 권한다. '이것' '저것' '부분' 따위의 단어로 주어나 목적어를 칭하는 '거시기 화법'을 지적하기도 한다(박근혜와 최순실의 사례를 보면 이것이 얼마나 나쁜 습관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한자어를 많이 쓰는 것이 품위있어 보인다는 일부의 생각을 전면 부정한다. 유시민 작가는 본인이 예전에 썼던 항소이유서까지 예시로 들면서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


작가의 말에 대부분 크게 공감하면서도, 실천이 어렵다. 웹진에 꾸준하게 글을 기고하고 있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단문보다 복문을 쓰는 일이 훨씬 더 많았다. 우리말로 표기해도 의사 전달이 충분히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외국어 표기에 익숙하여 굳이 외국어를 명시한 일도 잦았다.


이러한 좋지 않은 습관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유 작가의 이 책을 통해 최소한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이라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

Book | Posted by epmd 2015. 5. 24. 05:38

[청춘을 달리다] - 배순탁 저



[청춘을 달리다] (2014)

단순한 추억팔이에 불과한 책은 아니고, 학창시절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90년대의 뮤지션을 향한 일방적인 찬양도 아니다. 가볍게 읽어볼 만한 에피소드의 집합이긴 하나, 마냥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다. 제목에 담긴 '청춘'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대하여 여러 각도로 생각해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다.

작가가 자신의 삶에 영향을 준 뮤지션과 앨범에 대해 생동감 있게 묘사하되, 개인사와 인생관을 첨가했다. 일단,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예를 들어, 서태지의 솔로 2집의 경우, 나의 고등학교 2학년 시절을 즐겁게 해준 음반 정도로만 생각해 왔는데, 작가의 구수한 설명을 통해 앨범이 갖는 다양한 의미까지 알게 되었다.

작가 자신이 겪었던 혹독한 20대 시절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탓인지, 100%는 아니지만 공감 가는 견해가 많다. 배 작가는 고등학생 시절에 그토록 대학생이 되고 싶어했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지금의 10대와 20대는 더 이상 어른이 된다는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급변한 시대의 자화상이라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동안 이따금씩 씁쓸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책이다. 서점에서 고심 끝에 선택하셨다는데, 고심이 헛되지 않음을 배순탁 작가가 증명했다. '90년대에 10대를 보낸 것을 인생의 축복이라 생각하고 지금까지도 '90년대의 콘텐츠를 답습하는 나의 입장에서, 이 책은 괜찮은 선물이었다.

Book | Posted by epmd 2015. 3. 18. 22:09

일본전산 이야기

[일본전산 이야기] -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은 bullshit이다.

2010년 초, 첫 직장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당시 팀장님이 나에게 건네주면서 이 책을 읽어보라고 했다. 좀 옛날 사고 방식 같은 게 많이 보일 것이지만 일단 읽어는 보라길래 주말 여가 시간을 할애하여 통독했다.

나는 매우 구시대적이고 머저리 같은 경영진의 사고방식에 대하여 구구절절 칭찬인 양 늘어놓는 저자의 태도가 참 싫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봐도 불쾌하기만 하다.

책상에 음식을 놓고 얼마나 빨리 먹는지 확인한 다음, 모든 면접자에게 지금 행한 이 식사가 우리 회사의 면접이고, 우리 회사는 빨리 먹고 업무에 뛰어들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며, 밥을 빨리 먹고 빨리 소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능력이다 라는 식의 폭탄 발언을 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경영진이 구시대적인 발상에서 얼마나 허우적거리고 있는지 알게 해주는 사례이다.

제발 이런 책을 양서라고 밀어주지 말았으면 좋겠다. 지난 주말에 어머니를 모시고 설렁탕을 먹고 있었는데, 손님들이 마음대로 읽을 수 있게 개방해 놓은 책 중에서 유독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처음 읽어봤을 때의 그 부정적인 느낌이 고스란히 떠올라 밥맛이 뚝 떨어질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