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Review | Posted by epmd 2011. 4. 24. 21:59

KRS-One [Return of the Boom Bap] (1993)


※ 2005년 or 2006년 웹진 리드머(http://www.rhythmer.net)에 기재한 글.

01. KRS One Attacks
02. Outta Here
03. Black Cop
04. Mortal Thought
05. I Can't Wake Up
06. Slap Them Up
07. Sound of Da Police
08. Mad Crew
09. Uh Oh
10. Brown Skin Woman
11. Return Of The Boom Bap
12. 'P' Is Still Free
13. Stop Frontin'
14. Higher Level

Record Label : Jive
Released Date : 1993-09-28
Reviewer Rating : ★★★★

변화와 아픔의 시기

케이알에스-원(KRS-One, 이하 KRS)에게 있어 1992년은 다양한 변화를 겪고 앨범 흥행의 실패도 맛봐야 하는 다사다난한 해였다. 우선 그를 주축으로 하여 수년째 힙합 씬에 적잖은 영향력을 끼쳤던 부기 다운 프로덕션(Boogie Down Productions, 이하 BDP) 크루는 디-나이스(D-Nice), 자말-스키(Jamal-ski), 스카티 모리스(Scottie Morris) 등 여러 멤버가 빠지고 KRS와 그의 동생 케니 파커(Kenny Parker)를 위시한 소수만이 잔존하여 명맥을 유지하게 되는 대대적인 수정이 가해졌다. 게다가 그런 와중에 만들어낸 -BDP의 이름을 내건 마지막 정규 앨범인- [Sex and Violence]는 앨범 판매량이나 주변의 호응 등에서 모두 '대실패'를 하게 된다. 판매량과는 무관하게 [Sex and Violence]는 케니 파커, 프린스 폴(Prince Paul), 디-스퀘어(D-Square) 등이 주조해낸 양질의 비트와 KRS의 혈기왕성한 랩이 잘 버무려진 수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비운의 앨범으로 남는다.

전열을 가다듬고 만들어낸 역작

초기시절 그 어떤 집단보다도 강렬하게만 느껴지던 그들만의 결속력은 사라진 채, 사실상 KRS만이 남아 고군분투하고 있는 BDP 크루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아니 택해야 할 길은 솔로 뮤지션으로서의 선회뿐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딱히 고민할 필요조차 없었고, 결국 KRS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BDP의 존재를 뒤로한 채 심기일전하여 이듬해인 '93년 [Return of the Boom Bap]을 발표한다.
KRS가 첫 솔로 앨범에서 택한 프로듀서는 D.I.T.C. 진영의 Kid Capri와 Showbiz, 그리고 DJ Premier(이하 Primo)였다. Primo는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총 6곡의 비트를 제공했는데, 박력 만점의 KRS식 랩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며 전반적인 분위기를 주도한다. 그 중에서도 초반부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Outta Here"는 전형적이면서도 중독성 강한 프리미어(DJ Premier)식 곡 전개(두 마디 루프를 돌리고 턴테이블 리릭으로 훅을 처리하는)에 충실한 최고의 트랙이다. 묵직한 베이스라인과 슬릭 릭(Slick Rick)의 랩으로 처리된 턴테이블 리릭이 가져다주는 흥겨움 속에 KRS는 '80년대 초 힙합을 처음 접한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BDP의 변천사와 퍼블릭 에너미(Public Emeny), 런-디엠씨(Run-DMC), 에릭비 앤 라킴(Eric B. & Rakim) 등 '80년대 힙합 씬의 정상에 있었던 뮤지션들을 일일이 언급해가며 과거를 회고한다.
물론 KRS-프리미어 콤비가 뿜어내는 불꽃은 "Outta Here"에서 시들지 않고 계속해서 불을 지핀다. KRS가 공동 프로듀싱한 트랙 중엔 최면을 거는 카운트다운으로 시작하여 듣는 내내 묘한 기분에 심취하게 만드는 "I Can't Wake Up"과 같이 이채로운 재미를 제공하는 곡도 있다. 마리화나(blunt)에 대한 비판인지 아니면 단순히 래퍼에게 최면을 거는 것인지 구별하기 힘든 알쏭달쏭한 가사는 당시 팬들 사이에서 해석이 분분하게 갈리며 화제를 모으기도 하였다.
그리고 쇼비즈(Showbiz)와 손발을 맞춘 "Sound of da Police"을 통해 KRS 특유의 재기발랄한 가사를 재차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당시 LA 폭동으로 논란의 대상이었던 경찰들을 풍자하고자 여타 갱스터 래퍼들과 달리 직설적인 내용을 피하고 발음이 비슷한 두 단어 'Overseer'와 'Officer'를 연달아 외치며 웃음을 유발한다거나, 'My grandfather had to deal with the cops / My great-grandfather dealt with the cops / My GREAT grandfather had to deal with the cops / And then my great, great, great, great... when it's gonna stop?!'과 같이 해학적인 표현을 보여줌으로써 결국 진짜 범죄자는 경찰들('The real criminals are the C-O-P')이라는 결론을 짓는다.
또한, 이전부터 매 앨범마다 접할 수 있었던 레게풍의 분위기를 그리워할 이들을 위한 배려로 "Brown Skin Woman"과 같은 곡도 수록했으며, 비트박스에 맞춰 랩을 하는 -하지만 단순하면서도 결코 지루하지 않은- "Uh Oh"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BDP 시절의 '교훈적'인 느낌에서 벗어나 이색적이거나 유머러스한 면을 부각시키면서 이미지의 탈바꿈도 어느 정도 신경 썼음을 캐치할 수 있다. 물론 교훈적인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하며 '힙합 선생'으로서의 이미지를 다져왔던 그가 다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면서 색다른 모습을 쌍수 들고 환영하는 이들도 있는 반면에 '선생님'의 이미지가 너무 강한 나머지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 작에서도 교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은 완전히 사라진 게 아니었고, 뮤지션이 이 정도의 작은 변화를 시도하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니 개인적으로는 굳이 그의 가사에서 교훈적인 내용이 많이 줄었다는 것을 달갑잖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성공적인 재기

그의 가사가 어찌됐건 간에 부클릿에 명시된 'Return of the Boom Bap Means a Return of the Real Hard Beats and Real Rap'이란 문구에 걸맞게 진정 훌륭한 랩과 비트로 무장한 솔로로서의 첫 행보가 성공적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프리미어를 메인 프로듀서로 기용하고 키드 카프리(Kid Capri)와 쇼비즈를 초대하여 마치 물 만난 물고기가 된 양 열변을 토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실패'라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본 작에서의 KRS의 랩은 새로운 마인드로 무장한 특유의 혼이 배어 있는 탓인지 그 어떤 순간보다도 유난히 뚜렷한 주관과 자신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많은 후배 뮤지션들이 [Return of the Boom Bap]을 듣고 크나큰 영감을 얻었다는 일화는 앨범이 갖는 가치가 평작 수준 그 이상이라는 점을 입증해 준다.
마지막으로 단순히 솔로 전향 이후의 첫 결과물이라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이후 이어지는 [KRS-One]과 [I Got Next]가 등장할 수 있게끔 한 초석의 역할을 하는 작품이라는 사실에도 초점을 맞추어 보길 권한다. [Return of the Boom Bap]의 성공이 있었기에 [KRS-One]과 같이 명곡으로 점철된 후속작도 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