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글을 쓰는 2017년 2월 11일 오후 이 순간, 대한민국 웹 세상은 국내 최초 고교 랩 대항전이라는 부제의 프로그램 [고등래퍼]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장제원 의원의 아들이라는 장용준이 조건 만남을 가진 이력이 있다는 얘기부터, 그가 재학 중인 국제학교에 대해 보도하며 장 의원을 공격하는 언론사까지 보인다. 방송인 김구라의 아들 MC 그리의 실력에 대하여 논하는 이도 많다.
장용준의 과거사 같은 이야기는 차치하고, 프로그램 자체만 보더라도 나는 좋은 인상을 얻지 못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당연히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와 함께 참가자들의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이 안일한 준비 과정과 실력 부족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오래 전 나의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들보다 랩이나 노래를 더 잘하는 이를 축제 기간에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민망함이 더 커진다. 각 지역구 고교 랩퍼들의 옥석을 가리는 첫 방송이었다고 해도, 보기 불편했던 순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기 힘들다.
내가 듣기에도 장용준의 랩이 타 참가자에 비해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이 더 강했다. 그렇지만 나는 참가자 대부분이 그에 필적하는 퍼포먼스를 해내는 수준의 프로그램을 원했다. [언프리티 랩스타]는 각 시즌마다 얼마나 민망했던 순간이 많았던가. 기존에 확실하게 준비한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진행을 거듭하면서 실력을 향상시키는 이가 꽤 많았던 프로그램이다. 게다가 존재 자체가 희귀한 대한민국 여성 랩퍼들을 끌어 모아서 3차 시즌까지 진행했던 것부터 억지성이 뻔히 보이는 프로그램이었다. 예상컨대, [고등래퍼]도 [언프리티 랩스타]처럼 시간의 경과와 함께 참가자들이 실력을 키우는 구도로 흘러갈 공산이 커 보인다.
방송사 엠넷은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 그리고 [힙합의 민족]에 이어 이번에는 각 지역 고등학생을 힙합의 무대로 초대하고 있다. 일련의 기획을 바라보면서 매우 치명적인 단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연이은 제작은, 오히려 엠넷이라는 단일 경로를 통해서만 랩퍼의 입지를 넓힐 수 있다는 선입견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랩퍼는 다양한 형태의 공연과 음반, 음원 등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키워야지, 이런 식으로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마치 '힙합 음악 = 엠넷 프로그램을 통해 단기간에 랩퍼의 인지도를 만드는 음악'이라는 괴이한 공식을 (엠넷의 의도 하에) 수년째 굳히고 있는 것 같다. 장르 음악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그저 쓴웃음만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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