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즈음이었던 것 같다. 나보다 네 기수 높은 동아리 선배 한 분이 내 손에 1000원짜리 지폐를 쥐어주며 자판기 커피를 사람 수만큼 들고 오라고 지시했다.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자면, 동아리방에 있는 LP 가운데 드림 시어터(Dream Theater)의 [Images and Words] LP를 나에게 주시면서, LP를 쟁반 삼아 자동판매기 커피 여러 컵을 수령해 오라고 하셨다. 내가 속했던 동아리에 똥군기 같은 건 없었고, 나에게 장난삼아 지시했던 그 형에게도 악감정은 전혀 없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당시의 상황은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선배가 무엇을 지시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상황에서 진취적인 판단을 하지 않았던 게 가장 아쉽다. 그런 일을 겪었으면 [Images and Words] 앨범에 호기심을 갖고 들어봤어야 하는 건데, 힙합 음악의 소화에만 심취했던 당시의 나는 명반을 들어볼 좋은 기회를 걷어찼다.
정작 [Images and Words] 앨범을 좋아하게 된 건 한참 지나서였다.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을 좋아하는 상태에 이르게 됐는데, 마침 적절한 타이밍에 내한공연 소식이 들려왔다. 이번이 무려 여덟번째 내한이라고 한다. 인터파크에서 예매하여 공연 당일까지 한 달을 기다렸고, 2017년 9월 16일 드디어 그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공연장인 올림픽 홀 바깥에 도착해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공연장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관객들을 지켜봤는데, 평균 연령이 적어도 38세는 넘는 듯했다. 한국 나이로 35세인 내가 젊은 축에 속하는 게 확실했다. 50대 아저씨 아줌마 팬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2009년 조용필 공연 이후 직접 보는 콘서트 가운데 가장 높은 연령대의 관객들과 공존하는 시간이었다.
CD와 티셔츠도 판매했는데, 정작 내가 찾는 앨범은 없었다. [Images and Words] 25주년 티셔츠도 그리 예쁜 것 같지는 않아서 구매를 포기했다.
공연 시작 시간 10분이 남았을 때 공연장으로 들어갔는데, 아무리 봐도 평균 연령대가 불혹은 확실히 넘는 것 같았다. 나는 진정한 젊은피였다. 정확한 연령대는 알 수 없지만, 20대 관객보다 30~50대 관객이 압도적으로 많은 공연이었던 건 확실하다.
놀랍게도, 주최측은 내가 증오하는 코리안 타임을 허락하지 않았다. 6시 정시에 공연을 시작했다. 예상대로 제임스 라브리에(James LaBrie)의 보컬을 제외한 모든 것이 초반부터 완벽에 가까웠다. Born in 1963이니 이연걸, 견자단과 동갑이고, 나보다 무려 20살을 더 드신 형이니 어쩔 수가 없다. 예전에는 성대에 이상이 생겨 투어를 중단하고 창법까지 바꿨다는 아픈 과거를 나도 알기 때문에 보컬은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
세트 리스트는 크게 3개 파트였다. 오프닝 8곡 후 짧은 휴식 시간을 가진 뒤, [Images and Words] 8곡, 그리고 앵콜 ([Change of Seasons] EP) 7곡이었다. 사실 내가 드림 시어터의 엄청난 팬이 아니기 때문에 오프닝 곡들은 모르는 곡이 더 많고, [Change of Seasons]는 들어보지도 않아서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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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1. The Dark Eternal Night
2. The Bigger Picture
3. Hell's Kitchen
4. The Gift of Music
5. Our New World
6. Portrait of Tracy (Jaco Pastorius cover) (John Myung solo)
7. As I Am (bridged with an excerpt of Metallica's 'Enter Sandman')
8. Breaking All Illu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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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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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s and Words]
0. (Happy New Year 1992 - Intro Tape)
1. Pull Me Under
2. Another Day
3. Take the Time (extended outro with a John Petrucci guitar solo)
4. Surrounded
5. Metropolis Pt. 1: The Miracle and the Sleeper (with a drum solo by Mike… more )
6. Under a Glass Moon
7. Wait for Sleep (with extended keyboard intro)
8. Learning to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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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core]
1. Change of Seasons: I The Crimson Sunrise
2. A Change of Seasons: II Innocence
3. A Change of Seasons: III Carpe Diem
4. A Change of Seasons: IV The Darkest of Winters
5. A Change of Seasons: V Another World
6. A Change of Seasons: VI The Inevitable Summer
7. A Change of Seasons: VII The Crimson Suns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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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s and Words]를 정주행하는 시간에는 다수의 관객이 휴대폰을 들고 동영상을 촬영하거나 사진을 찍었다. 명반을 기억하는 한국의 아재 팬이 얼마나 많은지를 추정하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Dream Theater - Another Day
세션 주자마다 한 번씩 솔로 퍼포먼스도 보여주고, 때로는 존 마이영-존 페트루치 콤비의 동시 퍼포먼스도 볼 수 있었다. 누구 말마따나 실수하는 순간을 찾기 어려운 밴드였다.
EP 앨범의 7곡을 연주하는 앵콜 공연까지 이 똥파워 형들은 대략 3시간을 소화했다. 퇴장하면서 아재들의 이야기를 본의 아니게 엿들었는데, (이제 DT 봤으니 여한이 없다), (예전에 한국 왔을 때만큼 잘한다) 등 대체로 좋은 반응이었다.
여하튼 나도 만족한다. 제임스 라브리에의 보컬은 그냥 그런가보다 해야 한다.(...) CD 음원과 별 차이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연주를 해낸다는 밴드의 공연을 꼭 보고 싶었는데, 소원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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