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웹진 리드머(http://www.rhythmer.net)에 기재한 글.
본명 로렌스 파커(Lawrence Parker) 보다는 크리스 파커(Kris Parker) 혹은 KRS-One 등의 스테이지 네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케이알에스-원(KRS-One, 이하 KRS)은 뉴욕 브롱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디제이 스캇 캇 라 록(DJ Scott La Rock)과 함께 부기 다운 프로덕션(Boogie Down Productions, 이하 BDP)이란 이름으로 힙합 씬에 뛰어들었고, 그들의 데뷔작 [Criminal Minded] (1987)는 훗날 '최초의 하드코어 힙합 앨범'이라는 기념비적인 앨범으로 남는다. 스캇 라 록의 죽음 이후에도 KRS는 동생 케니 파커(Kenny Parker), 디-나이스(D-Nice) 등을 멤버로 끌어들여 BDP를 이끌었고, '90년대 초반까지 5장의 정규 앨범을 제작했다.
솔로 커리어의 시작
'92~'93년 무렵, BDP의 수장이었던 KRS는 [Sex and Violence] 앨범을 끝으로 그룹 활동을 그만두고 솔로로 전향한다. '80년대의 끈끈했던 결속력을 상실한 BDP의 어수선한 모습은 그가 솔로 활동으로 선회할 시기가 왔음을 암시하는 것과도 같았다. 레이블과의 인연은 끊어지지 않았기에 솔로 전향 후에도 자이브(Jive)에서 앨범 발매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심기일전하여 만든 초창기 두 앨범을 통해 그는 아직 대중에게 보여줄 것이 많음을, 그리고 건재함을 증명한다.
솔로 커리어의 초반부를 장식하는 [Return of the Boom Bap]과 [KRS-One]은 현재 KRS-One의 모든 앨범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메인 프로듀서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 그리고 키드 카프리(Kid Capri), 쇼비즈(Showbiz)와 함께 작업한 [Return of the Boom Bap]은 멈추지 않는 기관차를 연상케 하는 힘찬 앨범이었다. 셀프 타이틀이기에 간혹 KRS의 첫 솔로 앨범으로 오해받곤 하는 [KRS-One]에서도 프리미어의 흔적 -무엇보다도 KRS의 후배 뮤지션들에 대한 따끔한 충고와 프리미어의 비트가 버무러진 "MC's Act Like They Don't Know"- 을 찾아볼 수 있으며, 다스 이펙스(Das EFX), 버스타 라임즈(Busta Rhymes), 매드 라이언(Mad Lion)의 참여가 눈에 띄었다. 같은 시기 KRS는 채널 라이브(Channel Live)의 앨범 제작에 있어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자이브에서의 마지막 정규 앨범인 [I Got Next] (1997)는 KRS의 솔로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대중 친화적'인 앨범이었다. 펑크 그룹의 음원을 샘플링한 싱글 "Step into a World", 퍼프 대디(Puff Daddy)가 함께했던 동명의 리믹스 트랙, 레드맨(Redman)이 피쳐링한 'Heartbeat'는 기존의 KRS와는 확실히 차별화된 모습이었다. 그의 수많은 앨범 중에서 유일하게 빌보드 차트 10위권에 진입했던 앨범이기도 하다.
자이브(Jive)와의 작별 이후
KRS의 발자취를 추적해 보면 '97년 [I Got Next] 발매 후 베스트 앨범 [A Retrospective]가 발매되었을 뿐 2001년까지 약 4년의 공백기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는데, 당시 KRS는 자이브의 A&R 업무를 맡고 있었다. 2001년 자이브에서 사임한 후부터는 메이저 레이블과의 계약에서 멀어지게 되고, 본격적으로 연간 1장 이상의 새 앨범을 찍어내는 왕성한 활동이 시작된다. 그래서인지 2001년부터 2009년 현재까지의 앨범 중에는 범작으로 분류되는 앨범이 많다는 것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허약한 비트가 가득했던 [The Sneak Attack] (2001), 랩과 가스펠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했던 [Spiritual Minded] (2002), BDP 시절의 명곡 "Illegal Business"의 새로운 버전을 수록했지만 엉성한 앨범 구성으로 빈축을 사야 했던 [Keep Right] (2004) 등은 '80 ~ '90년대 그가 일궈냈던 걸작의 향연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실망스러운 앨범이었다. 나스(Nas)의 [Hiphop is Dead]에 전적으로 반박하는 앨범으로, 그리고 '80년대 BDP 시절 대립구도를 형성했던 말리 말(Marley Marl)과의 합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Hip-Hop Lives] (2007)는 멋진 뮤직비디오와는 대조적으로 그저 그런 완성도를 갖추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개인적으로 2001년 이후 KRS가 만든 가장 훌륭한 앨범은 2003년 작 [Kristyles]라고 생각한다. 다 비트마이너즈(Da Beatminerz), 디제이 레볼루션(DJ Revolution) 등의 프로듀서가 그와 호흡을 맞춘 가운데, 언더그라운드에 대한 견해, 물질 만능주의, 자신만의 힙합 철학 등을 읊조리는 [Kristyles]는 특이하게도 국내에서 라이선스 발매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후에 만든 앨범의 대부분이 이만한 완성도를 갖추지 못하고 범작으로 분류되곤 하는 것이 현실이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가끔 '힙합 선생' 보다는 '앨범 공장장'에 가깝다는 비아냥거림의 대상이 되기도 하여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Side Project
1. 채널 라이브(Channel Live) 앨범 제작
그는 랩 듀오 채널 라이브(Channel Live)의 데뷔 앨범 [Station Identification]의 제작 과정에서 메인 프로듀서로 활약하며 중추적인 역할을 해냈다. 채널 라이브를 대표하는 플래티넘 싱글 "Mad-Izm"에서는 랩 세션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그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한다.
2. 그룹 테라피(Group Therapy)
KRS는 나스(Nas), 알비엑스(RBX), 비-리얼(B-Real) 등 뉴욕과 LA의 랩 뮤지션이 의기투합하여 만들어진 슈퍼 프로젝트 그룹 떼라피의 일원이기도 했다. 싱글 "East Coast West Coast Killas"는 닥터 드레(Dr. Dre)의 앨범 [Dr. Dre Presents the Aftermath]에 수록되었다.
3. 영화 출연
랩 뮤지션들의 디스(Diss) 혈전을 다룬 비프(Beef) 시리즈에서 그를 찾아볼 수 있다. 많은 힙합 뮤지션이 카메오로 참여했던 추억의 영화 [Who's the Man?] (1993) 에서도 KRS를 발견할 수 있다.
4. KRS는 줄루 네이션(Zulu Nation)의 멤버이기도 하며, 힙합 문화를 장려하는 단체 템플 오브 힙합(Temple of Hiphop)을 설립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쉴 틈 없이 달려온 그에게 거는 기대
BDP 시절 동료 스캇 라 록의 사망, 넬리(Nelly)와 '#1'을 둘러싼 비프, 그리고 최근엔 의붓아들의 사망까지 그동안 불미스러운 일도 많았지만, 그는 그러한 걸림돌에도 굴하지 않고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살아왔다. 난무하는 범작들에 대한 우려 섞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음악 활동뿐만 아니라 힙합 문화의 전파에도 힘쓰고 있는 모습 자체는 높이 평가받아야 마땅할 것이며, 그러한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바란다. 솔로 커리어의 초기 시절처럼 완성도 높은 앨범을 기대하기는 어렵겠지만, 다시 한 번 심기일전하여 언더그라운드 씬을 뒤흔들 수 있는 신작으로 컴백하는 그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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