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 Posted by epmd 2017. 10. 12. 18:05

[남한산성] (2017)

 

[남한산성] - ★★★★

 

지난 추석 연휴 때 많은 영화를 봤다. 극장에서 본 영화 가운데 가장 깊은 여운이 남는 영화는 [남한산성]이다.

 

보기 전부터 정적이고 배우들의 대화가 주를 이루는 영화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수시로 컷이 바뀌는 블록버스터의 동적인 흐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사전에 이런 사실을 인지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날로그 액션 영화를 매우 좋아하고, [남한산성]에는 검증된 무술 감독인 허명행 감독이 참여했지만, 액션이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낮아서 큰 의미가 없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시종일관 '배우들의 대화'이며, 다행히 이병헌, 김윤석 등 굵직한 이름값의 배우들이 연기를 잘 했다.

 

배우들의 대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신하들 사이의 첨예한 의견 충돌이다. 국가의 존립 여부가 달린 중요한 시점에서 예조판서(김윤석)와 이조판서(이병헌)가 임금에게 제시하는 방안은 방법이 180도 다르다. 주장을 펼치려면 그에 따른 충분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들은 언제나 합당한 근거를 제시하며 주장을 관철시키려 한다. 관객이 무조건 한 사람만 옳다고 결론짓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이런 흥미로운 구도를 지켜보면서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상황이 조금 다르지만, 영화를 보면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도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언제나 국력이 약했다. 그리고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면서 외교 정책을 펼치는 지금의 상황은 영화 속의 상황과 상당 부분 닮았다. 제작자들도 이런 점을 고려하고 제작에 돌입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예조판서 김상헌은 지금으로 따지면 외교부 장관, 이조판서 최명길은 인사혁신처 처장에 해당한다는데, 사심 없이 국가의 밝은 미래를 염원하며 일하는 신하가 누구인지를 대한민국 정치인들에게 질문하는 모양새다.

 

오랜만에 소위 말하는 '국뽕'이 없는 영화를 봐서 만족한다. 애국심에 호소하는 콘텐츠가 생활 곳곳에서 발견되지만, 이렇게 국뽕을 최소화하고 생생한 역사 전달에 집중하는 콘텐츠도 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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