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5년 or 2006년 웹진 리드머(http://www.rhythmer.net)에 기재한 글.
Biography
뉴욕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퍼시 피(Percee P)는 그의 나이 3살 즈음 브롱스로 이주하고 이 때부터 브롱스를 주 활동 무대로 삼고 성장했다. 친형과 삼촌이 랩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힙합의 본거지인 뉴욕의 거리 문화를 몸소 체험하며 자연스레 힙합을 접할 수 있었고, 10살 때인 197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브롱스에 있는 대학을 다녔지만 고등학교 과정은 맨해튼에서 마쳤다. 같은 고교에 다니던 오거나이즈드 컨퓨젼(Organized Konfusion)의 두 멤버 패로아 먼치(Pharoahe Monch)와 프린스 포(Prince Po)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전해지는, 도미노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단어 행진이 주특기인 퍼시 피의 랩 스타일은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고, 학창시절 수차례 가졌던 랩 배틀에서 대부분 승리함으로써 명성을 얻었다.
이후 John Percy Simon이란 본명의 미들네임을 따서 'Percee P'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또 하나의 닉네임인 'The Rhyme Inspector'로 랩 씬에 뛰어든 그는 88년 12인치 싱글 "Let the Homicides Begin"을 내놓으며 잔잔한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뉴욕의 라디오 방송을 타면서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퍼시 피라는 이름을 각인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고, 훗날 이 싱글은 언더그라운드의 보석과도 같은 존재로 남게 된다(게다가 이 곡은 로드 피네스(Lord Finesse)와의 배틀이나 쥬라식 파이브(Jurassic 5)와의 만남에서도 큰 역할을 하는데, 그 일화는 글의 끝자락에서 따로 소개하기로 한다).
이후 간간히 싱글이나 EP를 발매하고(공연이 있을 땐 클럽 입구에서, 평소엔 뉴욕의 팻 비츠(Fat Beats) 레이블 앞에서 일정 시간을 두고 자신의 앨범을 직접 팔았다고 한다), 타 뮤지션의 앨범 제작에 관여하기도 하며, 라디오 방송도 맡는 등 힙합과 관련된 다양한 일들에 몰입하게 된다.
그럼 이쯤에서 올해 발매한 컴필레이션 앨범 [Legendary Status]를 통해 그의 행적을 좀 더 샅샅이 파헤쳐 보자.
Percee P - Legendary Status
그동안 발매한 싱글 트랙들과 미공개 트랙, 게스트로서 참여한 트랙, 그리고 프리스타일 라이브에 이르기까지... '80년대부터 현재까지 퍼시 피라는 이름이 들어간 20곡을 긁어모아 만든 이 앨범만큼 그의 발자취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매체는 없는 듯 하다. 아마도 퍼시 피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을 둔 적이 있는 힙합 리스너라면 이처럼 화려하기 그지없는 트랙리스트를 쭉 살피고 있는 사이 다음과 같은 의구심이 생길 것이다.
첫째, '80년대부터 활동한 뮤지션이 스톤 스로우(Stones Throw)와 계약하기 전까지 정규 앨범을 한 장도 내놓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 이는 곧 레이블 소속 문제와 연관된다. 물론 퍼시 피의 실력을 알고 있는 많은 레이블이 접촉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자유분방함이 보장되길 원하는 그로서는 간간히 내놓는 싱글 앨범과 92년 빅 비트(Big Beat) 레이블을 통해 발매한 EP 등이 전부였고 그저 몇몇 레이블 관계자들과 친분이 두터웠을 뿐이지, 여태껏 특정 레이블과 손잡고 정규 앨범을 만들기로 계약한 적은 없다(물론 현재는 스톤 스로우에 몸을 담고 데뷔 앨범 준비 작업에 여념이 없지만 지금 말하는 것은 그 이전 상황이다). 아마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받고 오래 머물 수 있는 레이블을 원하던 퍼시 피로서는 그의 요구 조건에 부합하는 곳이 없었던 까닭에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주변에서 레이블 소속 이후 우연찮게 또는 필연하게 겪게 되는 피해사례, 개인의 독립 레이블 운영에 이어지는 흥망성쇠, 대형 레이블의 희생양이 되어버리는 경우 등 다양한 케이스를 목격해 왔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처럼 주변에서 들려오는 좋지 못한 소식들도 그를 특별히 어느 한 곳에 소속되어 데뷔 앨범을 내지 않게끔 만든 간접적인 원인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계약한 레이블이 없었고, 퍼시 피 자신도 굳이 정식 앨범을 만들고자 서두른 적이 없었기에 스톤 스로우의 일원이 되기 이전까지 한 장도 만들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그가 택한 이 같은 행보는 곧 폭넓은 인지도를 확보하지 못한 주된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퍼시 피가 무대에 설 때마다 청중들이 누구인지 잘 모르고 의아해 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도 다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둘째, 앨범 부클릿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길게 나열된 올드스쿨 뮤지션들의 비디오테이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부클릿에 등장하는 VTR 테잎들은 모두 퍼시 피의 것이다. 그는 올드스쿨 뮤지션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앨범 속지를 통해 어필하고자 하였다. 인터뷰를 하면 콜드 크러시 브라더스(Cold Crush Brothers), 그랜드마스터 플래시 앤 퓨어리어스 파이브(Grandmaster Flash & The Furious Five) 등을 좋아한다고 수차례 얘기했었고, 심지어 자신의 미들네임인 "Percy"를 그대로 쓰지 않고 끝의 "y"를 "ee"로 표기해 "Percee"로 사용하는 것도 쿨 모 디(Kool Moe Dee)나 스푸니 지(Spoonie Gee)와 같은 올드스쿨 MC들을 따라하고 싶은 이유에서였다고 하니 이쯤이면 올드스쿨에 대한 사랑이 얼마나 각별한지 지레 짐작이 간다.
그리고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80년대 힙합퍼들에 관한 해박한 지식은 라디오 고정출연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90년대 초 스트래치(Stretch)와 바비토(Bobbito)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후부터 'Percee P's Old School Corner'가 신설되어 매주 진행을 맡았던 것도 다 그러한 밑바탕이 깔려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Stones Throw로의 합류와 새 앨범 준비작업
피넛 버터 울프(Peanut Butter Wolf)가 수장으로 자리하고 있는 레이블 스톤 스로우에서는 퍼시 피에게 관심을 보였고, 당시 피넛 버터 울프가 소속 뮤지션들을 대하는 것과 동일한 위치에서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받는다는 전제하에 마침내 합류했다. 이후 제이립(Jaylib)의 "The Exclusive", 와일드차일드(Wildchild)의 "Knicknack 2002" 등에 피쳐링하여 맹활약할 뿐 아니라 "Put It on the Line" 12인치 싱글도 발매하는 등 마치 물을 만난 고기처럼 왕성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스톤 스로우를 통해 선보이게 될 첫 정규작 [Percerverance](끈기나 불굴의 의지를 의미하는 단어 'perseverance'를 자신의 이름과 결합한 타이틀로 추정된다)는 제이 디(Jay Dee), 매드립(Madlib), 다이아몬드 디(Diamond D), 엠이디(MED), 와일드차일드, 프린스 포 등 예전부터 돈독한 친분 관계를 갖고 있는 많은 이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현재 매드립 프로듀싱의 'Untitled'라는 곡이 첫 싱글로 낙점된 상태이다.
※ Percee P 관련 일화
1. Battle with Lord Finesse
앞서 언급했던 데뷔 싱글 "Let the Homicides Begin"이 좋은 반응을 보이며 많은 이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게 된 이후 디아이티씨(D.I.T.C.) 진영의 로드 피네스와 배틀을 했던 적이 있었다. 퍼시 피는 당시의 랩 배틀을 비겼다('It was a tie.')고 회자한다.
여하튼 둘은 각자의 실력을 확인하며 존중하게 되었고, '92년 로드 피네스는 같은 디아이티씨의 멤버인 에이지(A.G.)를 통해 자신의 2번째 앨범 [Return of the Funky Man]에 퍼시 피를 초대하고 싶어 한다는 뜻을 전했다. 퍼시 피는 그 뜻을 받아들여 "Yes You May"와 "Kicking Flavor with My Man"이란 곡에서 게스트로 참여하여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2. 소스(The Source)지 선정 'Rhyme of the Month'
퍼시 피는 방금 말한 로드 피네스의 2집 앨범 수록곡 "Yes You May"에서 멋진 라이밍을 선보였고(첫번째 verse에서 활약하여 'Diss me, the P? That'll be suicide / You no frills with no skills, I'll just put you aside / Rappers are skinned in battles and winning them from within them / Befriend them, before I beat them I greet them then eat them, then send them'과 같이 자신감 넘치는 랩을 담아냈다), 이는 곧 '92년 저명한 힙합 잡지 소스(The Source)지에서 발표하는 'Rhyme of the Month'에 선정되는 좋은 결과를 낳았다.
3. Jurassic 5, Big Daddy Kane과의 조우
퍼시 피에게는 사진작가 바니(Barney)라는 친구가 있었다. 바니는 자신이 직접 찍은 힙합 뮤지션들의 사진을 모아 포트폴리오를 제작하겠다는 계획을 구상 중인 친구였다. 그것을 알게 된 퍼시 피는 자신의 또 다른 친구이자 프로모터인 록키(Rocky)를 바니에게 소개시켜 주었는데 록키는 바니가 구상하고 있는 일들이 자신의 관심사와 일치한다면서 큰 관심을 보였고, 급기야는 비디오, 포토그래프 등 여러 분야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될 만큼 가까운 사이가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니가 감사의 뜻으로 록키와 퍼시 피에게 쥬라식 파이브 뉴욕 공연 티켓을 건네주었고, 퍼시 피는 쥬라식 파이브의 공연장 로비에서 컷 케미스트(Cut Chemist)를 만나 자신을 직접 소개했다. 놀랍게도 컷 케미스트는 퍼시 피의 "Let the Homicides Begin"을 자신이 무척 아끼는 싱글이라 하면서 정말 당신이 그 퍼시 피가 맞느냐고 되물으며 반가워했고, 결국 그날 쥬라식 파이브의 공연에 퍼시 피가 찬조출연까지 하게 되었다. 퍼시 피의 빼어난 실력을 눈여겨본 쥬라식 파이브 측에선 당시 제작 중이던 2집 앨범 [Power in Numbers]에 그를 참여시키려 했고, 퍼시 피가 이를 흔쾌히 받아들여 "A Day at the Races"라는 곡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 같은 곡에 피쳐링한 빅 대디 케인(Big Daddy Kane)과 직접 대면한 것도 이 곡을 만드는 과정에서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