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웹진 리드머(http://www.rhythmer.net)에 기재한 글.
1. Get Dumb
2. Everywhere
3. Feel the Velvet
4. 3 Minute Classic
5. Daisycutta (feat. Kool Keith)
6. Eso Ain't Shit
7. Dunks Are Live, Dunks Are Dead
8. A.O.S.O.
9. Cemetery
10. Reggie Lewis Is Watching
11. Girls Gone Wild (Then & Now)
12. Most
13. Take Note
14. Perfect Person
15. Play Dumb
Record Label : Babygrande
Released Date : 2006-06-27
Reviewer Rating : ★★★
롱런하는 뮤지션의 음악 행보 어딘가에서는 한번쯤 변화의 물결이 요동치곤 한다. 기존의 사운드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최신 트렌드에 발맞추려 하는 경우는 최근 들어 그 예를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고, 어떤 뮤지션은 데뷔 이전부터 꿈꿔왔던 이채로운 모습으로 돌변하기도 하며, 또 어떤 그룹은 새로운 멤버를 영입하여 변화를 꾀하기도 한다. 지금 소개하는 세븐엘 엔 에소테릭(7L & Esoteric)의 2006년 작 [A New Dope]은 변화를 시도하는 힙합 듀오의 좋은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 물론 구체적으로 파고들자면 단순히 자그마한 변신이 아닌 180도 달라진 모습이기에 살짝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말이다.
변화의 중심은 프로듀서 세븐엘(7L)이다. 이전까지 알고 있던 세븐엘의 비트라 하면 피아노 루프와 턴테이블 리릭 훅(Hook) 처리 등을 통해 표현되는 어두운 분위기, 그리고 에소테릭(Esoteric)의 정박 랩을 받쳐줄만한 적당한 BPM 등이었는데, 본 작을 듣는 순간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힙합인지 테크노인지 IDM인지 분간하기 힘든 오묘한 분위기는 물론이거니와, 기존에 접할 수 없었던 전자음의 향연이 주를 이루는 업템포 사운드는 과연 우리가 알고 있던 세븐엘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이다.
앨범 타이틀에 걸맞게 에소테릭의 랩 또한 변화의 예외가 되진 않는다. 전 작 [DC2 : Bars of Death]에서부터 변화의 기미를 조금씩 느낄 수 있었기에 세븐엘의 그것만큼 충격적이진 않지만, '펀치라인의 공장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EP ~ 2집 시절의 모습은 시간이 흐를수록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는 판국이다. "Dunks Are Live, Dunks Are Dead"와 "Daisycutta"에서의 동일 단어를 두 번씩 반복하는 랩이나 "Feel the Velvet"의 나사 풀린 듯 느슨한 랩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쏘아붙이기 전문가' 에소테릭의 그것이 아니었다. 에소테릭은 모 웹진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제는 랩 배틀이 질린다(I can't write anymore battle raps and I'm bored to death with it...)'라고 실토하기도 했는데, 그러고 보면 그의 변신에는 다 마땅한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변화의 시도 자체는 좋다. 하지만 막상 끝까지 듣고 있으면 180도 달라진 두 남자의 신작을 멋지다고 치켜세우기도 모호한 노릇이다. 어마어마한 BPM을 자랑하는 쿨 키스(Kool Keith) 피쳐링의 첫 싱글 "Daisycutta"는 강력한 중독성만큼이나 만족스런 트랙이지만, 나머지 곡들 대부분은 도대체 무슨 이유를 대고 돕(dope)하다고 말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중간에 자연스럽게 선회하는 비트를 통해 참신한 전개를 주 무기로 삼은 "Dunks Are Live, Dunks Are Dead"와 "A.O.S.O.", 앨범 중간 중간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던 세븐엘의 찰랑거리는 드럼 등은 분명 매력으로 다가오지만, 변화의 최첨단에 서 있는 트랙 대다수가 이렇다 할 강력함을 주지는 못한다. 오히려 세븐엘과 에소테릭의 옛 모습이 그나마 가장 비슷하게 재현되는 "Reggie Lewis Is Watching"과 "Take Note"가 귀에 착착 감긴다. 이들의 옛 모습에 너무나 익숙한 탓인지 나를 포함하여 이들을 오래전부터 지지해온 사람들 대부분은 "Take Note"를 듣는 순간 에소테릭의 날카로운 랩에 열광하고 세븐엘의 비트에 환호성을 지른다. 그들이 이번 앨범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궁극적인 모습은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옛 추억에 잠기는 우를 범하는 셈이다.
세븐엘과 에소테릭이 직면한 현 상태는 같은 레이블 베이비그랑데(Babygrande) 소속의 제다이 마인드 트릭스(Jedi Mind Tricks, 이하 JMT)가 [Visions of Gandhi] 발매 당시 겪었던 상황과 무척 흡사하다. [Visions of Gandhi]는 절대 성의 없게 만든 앨범이 아니었지만, 기존의 색깔을 배재한 채 나타났던 JMT는 언더그라운드 힙합 팬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었다. 세븐엘과 에소테릭의 현 상황도 JMT가 처했던 당시 상황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 두 남자의 변화를 지지하는 세력과 변신에 심각한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들로 나뉜 채 의견이 분분하다. 이 시점에서 나는 아무리 들어도 dope하지 않은 이들의 결과물을 그다지 옹호하고 싶지는 않다. 아니 지지하기는커녕 행여나 차기작마저 이러한 실험 대상이 되는 건 아닌지 근심 걱정이 산더미처럼 생겨날 정도이고, 정말 그랬다가는 기존의 골수팬들을 송두리째 잃어버릴 게 뻔해 보인다.
힙합 씬에 뛰어든 지도 어언 10년이 된 듀오이기에 한번쯤 변화를 꾀하는 것은 너무나 필연적인 일이었지만, 세븐엘과 에소테릭의 그것이 단지 한순간의 외도이길 바라게 되는 건 왜일까. 에소테릭은 정말 랩 배틀과 펀치라인 공장 풀가동에 염증을 느낀 것인지 모르겠지만, 현재 제작 중인 솔로 앨범에선 부디 앙칼진 예전 모습으로 돌아갔으면 좋겠고, 7L이 기획 중인 비욘더(Beyonder)와의 두 번째 프로젝트 앨범 역시 본래의 세븐엘 다운 모습으로 돌아가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New'하지만 절대 'Dope'하지는 않은 이들의 2006년 신작은 단지 한번쯤 시도하는 실험적인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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