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웹진 리드머(http://www.rhythmer.net)에 기재하려다 실패한(!) 글.
비트너츠(The Beatnuts)는 어느덧 데뷔 햇수로 20년을 앞두고 있는 노장 힙합 프로덕션 듀오이다. 참신한 비트와 향락적인 가사로 발표하는 앨범마다 "수작" 혹은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아왔던 그들이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들이 빚어낸 작품은 절반 이상이 절판되었고, 특히 '90년대의 앨범은 대체로 구하기 어려워진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 때문인지 한 때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트너츠의 국내 인지도는 그다지 높지 않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꽤 낮은 편이다. 'World's Famous'를 밥 먹듯이 외치던 그들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인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이 자리를 통해 힙합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시대에 맞춰 변화를 거듭해온 이 위대한 힙합 듀오를 소개하려 한다.
초기 - 결성 과정과 데뷔 EP, 그리고 첫 정규 앨범.
주주(JuJu 혹은 Junkyard Ju-Ju)와 사이코 레스(Psycho Les)는 뉴욕에서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힙합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10대 때부터 디제잉과 랩을 시작했다. 특이하게도, 둘은 각각 도미니칸-아메리칸, 콜롬비안-아메리칸인데, 이러한 배경은 훗날 이들의 음악에 고스란히 반영되기도 한다. 지인의 소개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두 재주꾼은 아프리카 밤바타(Afrika Bambaataa)가 그들을 네이티브 텅(Native Tongues) 패밀리에게 소개하게 되면서 인지도를 넓힐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제 3의 멤버 쿨 패션(Kool Fashion, 나중에 솔로로 데뷔하면서 알 타릭(Al' Tariq)으로 개명)을 만나게 되고, '90년대 초반에는 커먼(Common)이나 너티 바이 네이처(Naughty By Nature)처럼 꽤 굵직한 이름값을 가진 힙합 뮤지션의 앨범에 프로듀서로 여러 차례 참여했다.
'92년, 비트너츠는 데뷔 앨범의 발매를 앞두고 있었으나, 쿨 패션이 마약 소지와 관련하여 유죄 선고를 받는 바람에 계획이 뒤틀리게 된다. 결국 데뷔 앨범 [Intoxicated Demons The EP]는 레이블을 옮기는 등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치면서 '93년이 되어서야 공개되었다. 지금도 비트너츠 하면 떠오르는 향락적인 가사의 향연은 데뷔 앨범부터 굳어진 스타일이었고, 재즈 샘플링에 충실한 비트 역시 데뷔 때부터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짤막한 러닝 타임의 EP에 이어 이듬해 등장한 정규 앨범 [Street Level]은 전작의 스타일을 그대로 계승하는 작품이었다. 팝 적인 느낌의 코러스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거리의 냄새가 진동하는 이 앨범을 끝으로, 제 3의 멤버 쿨 패션은 무슬림(이슬람교도)이 되면서 알 타릭(Al' Tariq)으로 개명하고 솔로로 전향한다. 물론, 주주와 사이코 레스와는 계속해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기에 훗날 서로의 앨범에 참여하며 변치 않는 우정을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중기 - 상업적 노선을 타다.
비트너츠의 앨범이 본격적으로 에픽(Epic)이나 소니(Sony)와 같은 대형 배급사를 통해 발매된 것은 '97년부터이다. '97년 발매한 [Stone Crazy]가 그 출발점인데, 비트너츠와 마찬가지로 라티노(Latino) 계열의 뮤지션인 빅 퍼니셔(Big Punisher 혹은 Big Pun)와 쿠반 링크(Cuban Link)가 참여한 싱글 "Off The Books"가 대성공을 거두었다. 인스트루먼틀 앨범 [Hydra Beats, Vol. 5]와 리믹스 앨범 [Remix EP: The Spot]을 발매한 비트너츠는 '99년 [A Musical Massacre]를 통해 최고의 시기를 맞이한다. 힙합의 본질적인 모습에 충실하면서도 폭넓은 사운드 스케이프를 추구한 이 앨범은 "Watch Out Now"라는 싱글이 위용을 떨쳤다. 빌보드 앨범 차트 35위에 오르며 그들의 커리어를 통틀어 상업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고, '99년을 대표할만한 힙합 앨범의 반열에 오르며 상업성과 음악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쟁취한 작품으로 남는다.
하지만, 2001년의 [Take It or Squeeze It]과 두 장의 컴필레이션 음반을 마지막으로 비트너츠와 대형 레이블 간의 계약은 끝을 맺는다. 여전히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라틴 음악의 향기로 가득한 [Take It or Squeeze It]은 평단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상업적으로 실패한 앨범(미국 내 15만 장 이상 판매)이 되고 만다. [A Musical Massacre]에 수록된 히트곡의 리믹스 버전인 "Se Acabo (Remix)"에 반가운 이름 메소드 맨(Method Man)이 참여하고, 비트너츠의 초창기 멤버였던 알 타릭까지 지원 사격을 아끼지 않았으나, 만족할만한 판매고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후기 - 2002년부터 현재까지의 활동.
Loud 레이블과의 계약 만료 후 비트너츠는 언더그라운드 씬으로 회귀한다. LandSpeed 레코드와 계약하고 발매한 [The Originators]는 그들의 역량이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할 수 있는 결과물이었다. 코메가(Cormega), 라지 프로페서(Large Professor), 그리고 전작에 이어 다시 참여한 알 타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뮤지션의 참여가 눈에 띄었지만, 언더그라운드 레이블을 통해 발매됐기에 상업적인 재미를 보진 못했다.
LandSpeed를 떠나 2004년에 Penalty 레코드에서 발매한 [Milk Me]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앨범이었다. 앨범 발매 전부터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를 잘근 잘근 씹어낸 앨범'이 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는데, 뚜껑을 열어 보니 실제로 제니퍼 로페즈를 디스(Diss)하는 트랙이 실려 있었다. 제니퍼 로페즈의 "Jenny from the Block"이라는 곡이 비트너츠의 히트곡 "Watch Out Now"와 동일한 샘플을 사용했다며 프로듀서인 트랙마스터스(Trackmasters)와 코리 루니(Cory Rooney)를 비난하고, 제니퍼 로페즈에게도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Confused Rappers"라는 곡 덕분인지, 앨범은 적잖은 화젯거리를 몰고 다니며 짭짤한 흥행 수익을 거두었다. 한편, [Milk Me]는 랩퍼들 뿐만 아니라 키보드, 기타, 베이스 등의 세션 뮤지션들을 두루 기용하면서, 기존의 앨범과 달리 리얼 연주의 비중을 높이고 샘플링의 빈도를 줄이는 식의 실험이 이루어진 앨범이기도 하다.
[Milk Me]를 끝으로, 비트너츠의 스튜디오 작업 활동은 꽤 뜸해진 상태이다. 물론, 힙합 씬에서 완전히 물러난 것은 아니다. 사이코 레스는 2007년 [Psycho Therapy]라는 솔로 앨범을 발매했고, '08년에는 비트너츠의 미공개 트랙 모음집 [U.F.O. Files]가 공개되기도 했다. 2010년 초에는 [Planet of the Crates]라는 타이틀의 앨범이 등장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2010년 9월 현재까지는 공개되지 않은 상태이다.
비트너츠의 음악 세계
앞서 언급했듯이, 비트너츠는 시대의 흐름에 걸맞게 진화를 거듭한 프로덕션 팀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초기의 앨범과 이후의 앨범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즉, [Street Level]에서 느껴지던 '90년대 중반 특유의 raw한 느낌을 2001년의 [Take It or Squeeze It]에서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초창기에 재즈에 기반을 둔 샘플링이 주를 이룬 반면, 90년대 후반부터는 라틴 음악의 정취를 그윽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대부분이다. 이후 그들은 리얼 연주 영역까지도 실험을 서슴지 않았다.
비트너츠가 만드는 비트가 특별한 이유를 단번에 설명하기란 어렵다. 몇몇 곡을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가장 나을 듯한데, 먼저 [A Musical Massacre]의 "Beatnuts Forever"가 좋은 사례가 될 수 있겠다. 이 곡은 타 힙합 앨범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드럼 운용 속에서도 힙합 특유의 그루비함을 전혀 잃지 않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The Originators]에 수록된 "Buying out the Bar"가 안겨다 주는 흥겨움은 또 어떠한가. 비트너츠의 대표곡 "Watch Out Now"가 지닌 매력은 두 말 할 필요조차 없다. 그들은 청자로 하여금 자신도 모르게 비트너츠의 노래를 흥얼거리게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 참신함이나 창조성만큼은 그 어떤 힙합 프로덕션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던 이 듀오가 후배 뮤지션들에게 모범 사례로 영원히 남길 바란다.
Beatnuts Discography
Intoxicated Demons The EP (1993)
Street Level (1994)
Stone Crazy (1997)
Hydra Beats, Vol. 5 (1997)
Remix EP: The Spot (1998)
A Musical Massacre (1999)
World Famous Classics (1999)
Take It or Squeeze It (2001)
Beatnuts Forever (2001)
Classic Nuts, Vol. 1 (2002)
The Originators (2002)
Milk Me (2004)
U.F.O. Files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