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 Posted by epmd 2017. 2. 22. 12:08

스콧 앳킨스 (Scott Adkins)

성룡과 이연걸의 영화는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하게 봤지만, 장 클로드 반 담의 영화는 오히려 중학생 시절에 가장 많이 접했다. 그가 주연을 맡은 영화는 극장가에서 별 볼 일이 없더라도, 비디오 대여 순위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중학생 때 학교에서 봤던 [퀘스트] 같은 영화가 딱 그런 케이스였다. 아마도 그의 필모그라피에서 세계적으로 흥행 대박을 터뜨린 영화는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유니버셜 솔져]가 유일무이했을 것이다. 조금 더 너그럽게 봐주면 [서든 데스]까지 포함할 수는 있겠다. 전성기가 한참 지난 2010년대의 [익스펜더블] 시리즈는 예외로 하자.

이렇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반 담 이후, 내가 선호하는 서양 액션 배우는 스콧 앳킨스(Scott Adkins)이다. 성룡 주연의 영화 [액시덴탈 스파이]와 [메달리온]에 참여했고, [본 얼티메이텀]에도 등장했다는 점을 뒤늦게 확인할 수 있었다. [제로 다크 서티]에서 잠입하는 CIA 요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스콧의 행보를 반 담과 연관시키면 흥미로운 점이 몇 가지 있다. 스콧 앳킨스도 장 클로드 반 담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반 담의 옛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에 참여하기도 하고, 때로는 반 담과 공동 주연을 맡기도 했다. 그리고 제3시장(DVD, 블루레이)으로 직행하는 영화가 굉장히 많다는 점도 반 담과 매우 닮았다.

액션 영화 애호가의 입장에서, 그가 주연을 맡은 다수의 영화가 비디오 시장으로 직행한다는 점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Undisputed] 시리즈는 성공을 거듭하며 후속작이 4편까지 나왔고, 이름부터 B급 영화의 향기가 진동하는 [Ninja] 시리즈도 굉장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렇지만 극히 낮은 인지도 때문에 한국에서 그의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다. 스콧 앳킨스 주연의 영화를 블루레이 타이틀로 구할 수는 있지만, 대부분 한글 자막이 없는 제품이다. 와이어나 CG의 도움도 없이 다수의 액션 배우가 열연했던 [언디스퓨티드] 같은 영화의 블루레이 정식 발매 확률은 0에 수렴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수요가 드물다 보니 공급도 드문 거다.

스콧이 더 늙기 전에 대형 블록버스터에서 주연을 맡을 때가 왔으면 좋겠는데, 감독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외모도 수려하고 몸은 말 할 필요도 없는 배우인데, 한 번쯤 대형 영화에서 이름을 날릴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극장에서도 그의 맨 몸 액션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추천 작품
[Undisputed 2] (2006)
[Undisputed 3] (2010)
[Special Forces] (2003)
[Ninja: Shadow of a Tear] (2013)


Special Forces (2003)


Ninja: Shadow of a Tear (2013) Scott Adkins vs. Kane Kasugi


Undisputed 3 (2010) Scott Adkins vs. Lateef Crow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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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안희정 지사의 '선한 의지' 발언에 대하여 논란이 많았고, 지금까지도 다수의 청중이 갑론을박하는 분위기다. 어젯밤 이와 관련하여 안 지사가 현재 가장 공신력 있는 뉴스 채널에서 해명할 기회를 가졌다.

안희정 지사가 말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그의 화법은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손석희 아나운서의 질문에 대여섯 번 이상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는데, 이야기를 조금 더 쉽게 풀어서 했다면 그렇게 반복되는 질문도 없었을 것이고 시청자의 이해도 쉬웠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나를 포함하여 수많은 대한민국 흙수저가 열망하는 것은 '정의'이다. 대권 주자라면 때로는 과감하게 직설적인 발언도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이재명 성남시장의 강한 워딩이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하는데, 가끔은 그의 발언이 등을 긁어주는 효자손처럼 매우 시원시원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작년 11월에 그의 지지도가 수직상승한 이유는 강한 발언 때문이었다. 안 지사가 이 시장의 캐릭터를 겸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주의 깊게 참고해야 할 워딩이라는 점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울러 '대연정'이나 '선한 의지'에 대한 논란에 대하여 안희정 지사는 지금보다 더 확실하게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충청권 출신인들의 성향이라는 말은 핑계에 불과하다. 안철수나 반기문처럼 대권 후보가 중립주의 예찬론에 빠지거나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면 대중에게 외면당한다. 뚜렷한 발언을 하면 당연히 누군가에게는 지지를 받을 것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만약 그것조차 감수할 생각이 없다면, 단언컨대 대권 주자의 자격이 없다.

어제 KBS한국어능력시험을 치렀다. 약 6~7년 전부터 한번쯤 응시하고 싶었던 시험이다.

시험 출제 기관 정보는 다음과 같다.
- 주최: KBS
- 주관: KBS한국어진흥원
- 출제, 감수, 관리: KBS한국어연구회 + 자문위원


문제 출제 영역은 아래와 같이 크게 6개 영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 듣기, 말하기
- 어휘, 어법
- 쓰기
- 창안
- 읽기
- 국어문화


[후기]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우 어렵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성장하고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응시할 가치가 있는 시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험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영역은 고유어, 사이시옷(최근에 출제되지 않는 추세), 로마자 표기, 띄어쓰기 등이다. 어휘와 어법(문법) 분야는 다 어렵다고 보면 된다. 어휘와 어법 문제는 100개 문항 중 무려 30 문제. 30퍼센트라는 막강한 비중을 차지한다. 이렇게 큰 비중을 감안하면 공부를 하긴 해야 하는데, 단기간에 끌어올리기 힘든 영역이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한자 공부에 관심이 있었고, 한자능력검정시험을 치른 경험도 있기 때문에 한자어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실제 시험에서도 한자 병기의 문제가 출제되었는데 운과 실력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정답을 고를 수 있었다.

반면에, 고유어가 등장하면 난감하기 그지없다. 공부할 때부터 시험을 치를 때까지, 생소한 고유어에 쩔쩔매곤 했다.

듣기, 말하기 영역이 듣기 평가이며, 듣기 평가가 끝난 이후부터 약 90분 동안 85문제를 풀어야 한다. 중학생 때부터 줄곧 한국 현대 문학에 관심이 없었던 나에게 국어문화 영역은 쥐약과도 같았다. 북한어도 한 문제 출제된다.

[바라는 점 + 비평]
※ 출제 위원들이 수년 동안 여론을 유연하게 수렴했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이 몇몇 보인다.

1. 고유어는 실생활에서 많이 쓰는 단어 위주로 출제했으면 좋겠다.
나는 KBS한국어능력시험이 단지 등급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시험이 아니라,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시험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 취지에서, 지금보다는 실용성에 더 초점을 맞췄으면 하는 바람이다.

2. 출제자들은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응시하도록 유도했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태어나 죽는 날까지 한국어를 모국어로 삼고 사는 사람이 수천만 명이다. 그렇지만, 한국어 오남용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관심을 갖는 이는 드물다. 전공을 막론하고,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에 대한 관심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데 말이다. 출제자와 응시자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하고, 특히 출제위원들은 다각도로 고민해야 한다. 응시 비용을 낮출 생각이라도 해보던가(그럴 일은 없겠지?).

3. 예전부터 논란이 많았지만, 홈페이지 운영에 더 신경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4. 시험장이 너무 춥다. (...)
히터를 가동했지만, 창가에 앉는 바람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추위에 맞서 싸우면서 문제를 풀어야만 했다. 요즘 추위가 풀렸는데, 왜 시험 당일에만 예외였는지 모르겠다.

Music | Posted by epmd 2017. 2. 11. 14:29

[고등래퍼] 1회 감상평

지금 내가 글을 쓰는 2017년 2월 11일 오후 이 순간, 대한민국 웹 세상은 국내 최초 고교 랩 대항전이라는 부제의 프로그램 [고등래퍼]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장제원 의원의 아들이라는 장용준이 조건 만남을 가진 이력이 있다는 얘기부터, 그가 재학 중인 국제학교에 대해 보도하며 장 의원을 공격하는 언론사까지 보인다. 방송인 김구라의 아들 MC 그리의 실력에 대하여 논하는 이도 많다.

장용준의 과거사 같은 이야기는 차치하고, 프로그램 자체만 보더라도 나는 좋은 인상을 얻지 못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당연히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와 함께 참가자들의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고등학생이라는 신분이 안일한 준비 과정과 실력 부족의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오래 전 나의 고등학교 시절에도 그들보다 랩이나 노래를 더 잘하는 이를 축제 기간에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민망함이 더 커진다. 각 지역구 고교 랩퍼들의 옥석을 가리는 첫 방송이었다고 해도, 보기 불편했던 순간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기 힘들다.

내가 듣기에도 장용준의 랩이 타 참가자에 비해 이목을 집중시키는 힘이 더 강했다. 그렇지만 나는 참가자 대부분이 그에 필적하는 퍼포먼스를 해내는 수준의 프로그램을 원했다. [언프리티 랩스타]는 각 시즌마다 얼마나 민망했던 순간이 많았던가. 기존에 확실하게 준비한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 진행을 거듭하면서 실력을 향상시키는 이가 꽤 많았던 프로그램이다. 게다가 존재 자체가 희귀한 대한민국 여성 랩퍼들을 끌어 모아서 3차 시즌까지 진행했던 것부터 억지성이 뻔히 보이는 프로그램이었다. 예상컨대, [고등래퍼]도 [언프리티 랩스타]처럼 시간의 경과와 함께 참가자들이 실력을 키우는 구도로 흘러갈 공산이 커 보인다.

방송사 엠넷은 [쇼미더머니]와 [언프리티 랩스타], 그리고 [힙합의 민족]에 이어 이번에는 각 지역 고등학생을 힙합의 무대로 초대하고 있다. 일련의 기획을 바라보면서 매우 치명적인 단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연이은 제작은, 오히려 엠넷이라는 단일 경로를 통해서만 랩퍼의 입지를 넓힐 수 있다는 선입견을 키울 가능성이 크다. 랩퍼는 다양한 형태의 공연과 음반, 음원 등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키워야지, 이런 식으로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마치 '힙합 음악 = 엠넷 프로그램을 통해 단기간에 랩퍼의 인지도를 만드는 음악'이라는 괴이한 공식을 (엠넷의 의도 하에) 수년째 굳히고 있는 것 같다. 장르 음악을 사랑하는 입장에서 그저 쓴웃음만 짓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의 최종여부를 결정하는 격동의 시기, 아울러 차기 대선까지 생각해야 하는 시기에 발맞춰 발간한 책이다. 인터뷰 방식으로 지금까지 조금만 알고 있거나 전혀 모르고 있었던 대통령 후보 문재인의 생각에 대하여 자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책은 크게 6개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기억
사람
광장
약속
행복
새로운 대한민국

함경도에서 피난을 온 아버지, 그리고 문 후보의 학창시절과 군복무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는 '기억' 파트는 그의 유년시절부터 20대까지를 중점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파트이다. 차기 국정 운영에 대한 의견은 '약속'과 '새로운 대한민국' 파트에서 집중적으로 논한다. 사드(THAAD) 배치 문제, 북핵 문제, 무기 수입 + 방산비리, 검찰 + 경찰 + 언론 개혁, 청년실업과 교육 불평등, 지진과 원자력발전소 문제 등, 국가의 수장이 된다면 국가를 어떤 식으로 운영할지에 대한 자세한 답변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 5천만 국민 중 한 사람으로서, 크게 공감하고 지지하는 의견도 있는가 하면, 공감하지 않는 의견도 있다. 예를 들면, 5년 단임제보다는 4년 중임제를 선호한다는 문 후보의 의견에 나도 동의한다. 개헌을 향한 의지와 방식도 전적으로 찬성한다.

문 후보가 매사에 진지하게 답하는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의 계획에 100% 찬성하는 건 아니다. 책을 통해서 가끔은 실현 가능성이 낮은 방안을 제시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안건에 대해서는 실현할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바탕으로 의견을 피력하고 있음이 훤히 보인다. 책을 통해 정의 구현이라는 목표를 향한 그의 '절실함'과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 차기 대권 후보의 의지를 이 책처럼 인터뷰 방식으로 알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과 황교안 국무총리의 차기 국정 운영 방안도 이렇게 활자 형태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네거티브 공세는 정말 지겹다. 대권 후보들의 국가 운영 안건에 대한 의견을 냉정하게 비교하면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이야말로 유권자가 가져야 할 가장 바람직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Article/Review | Posted by epmd 2017. 1. 19. 21:39

The Lox [Filthy America... It's Beautiful]


※ 2017년 웹진 리드머(http://www.rhythmer.net)에 기재한 글.

01. Omen
02. Stupid Questions
03. What Else You Need to Know
04. The Family
05. The Agreement (feat. Fetty Wap and Dyce Payne)
06. Move Forward
07. Savior (feat. Dyce Payne)
08. Don't You Cry
09. Hard Life (feat. Mobb Deep)
10. Filthy America
11. Bag Allegiance
12. Secure the Bag (feat. Gucci Mane and InfaRed)

Record Label: D-Block / Roc Nation
Released Date: 2016-12-16
Reviewer Rating: ★★★

지금은 의미가 퇴색했지만, 슈퍼스타였던 DMX와 3인조 랩 그룹 록스(The Lox 혹은 The L.O.X.)가 미국 뉴욕 주 용커스(Yonkers) 시를 대표하는 랩퍼였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용커스 출신의 삼인방 제이다키스(Jadakiss), 스타일스 피(Styles P), 쉭 라우치(Sheek Louch)는 '98년 배드 보이(Bad Boy Records)에서 발매한 첫 앨범으로 큰 성공을 이루었고, 러프 라이더스(Ruff Ryders)에 합류하여 전성기를 이어갔다. 비록, 록스가 DMX나 이브(Eve)만큼 막강한 앨범 판매량를 보장하지는 못했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 러프 라이더스 진영의 성공을 이끈 주역이었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은 여기까지다. 불혹의 나이에 이른 세 남자가 처한 현실은 냉혹하다. 10여 년의 세월 동안 스타일스 피는 셋 중에서 가장 많은 스튜디오 앨범을 만들었지만, 주목할만한 성과가 없었다. 쉭 라우치는 다수의 솔로 앨범뿐만 아니라, 우탱 클랜(Wu-Tang Clan)의 고스트페이스 킬라(Ghostface Killah)와 협업하여 [Wu-Block]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지만 기대 이하의 앨범이었다. 셋 중에서 차트 성적이 가장 좋았던 제이다키스의 솔로 커리어도 빼어난 랩 실력을 감안한다면 그리 만족스러운 성적표는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택한 행보는 각자의 랩 커리어에서 가장 빛났던 시절인 록스였다. 무기한 휴업이나 다름 없었던 록스가 다시 기지개를 켠 것은 2013년, EP [The Trinity]를 공개한 시점이었다. 이들의 활동은 EP에서 멈추지 않았다. 각자 솔로 활동과 병행하며 록스의 새 행보를 준비했고, 2016년 말 정규 앨범 [Filthy America... It's Beautiful]로 부활을 알렸다.

랩에 초점을 맞추어 앨범을 들으면, 전반적으로 균형이 잘 잡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41분의 짧은 시간이지만, 셋 중 어느 한 명에게도 치우치지 않은 채 공평한 비중을 유지한다. 페티 왑(Fetty Wap)을 초대하여 후렴구에 활용하기도 했고, 맙 딥(Mobb Deep)과 구찌 메인(Gucci Mane)처럼 벌스에 직접 참여하는 게스트도 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앨범의 주인공은 록스라는 점을 확고하게 유지한다. 안일한 태도로 만든 앨범이 아니라는 증거이다.

가사의 소재 또한 흥미롭다. 영화를 인용하여 공포 분위기를 조장하기도 하고("Omen"), 패밀리라는 단어에 대해 논하며("The Family"), 법정 드라마를 연출하기도 한다("Filthy America"). 특히, 눈에 띄는 건 "Filthy America"다. 법원에서 배심원의 유죄 판결을 받는 가운데 멤버 각자 과거를 회고한다는 참신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이처럼 셋 모두 각자 위치에서 괜찮은 랩을 구사하며 16년 만의 새 정규작 발매를 자축했다.

그러나 잘 잡힌 균형과 달리 곡 자체의 완성도는 대부분 평이하고 몇몇 곡은 기대 이하다. 다양한 프로듀서를 택해서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양질의 비트가 부족하다는 것이 문제다. 다수의 붐뱁(Boom-Bap) 스타일 트랙과 두 개의 트랩(Trap) 넘버가 공존하는데, 전체적으로 어두운 느낌을 유지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강한 인상을 주진 못한다. 비트를 잘못 선택한 대표적인 사례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사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Filthy America"이다. 귀에 감기는 맛이 전무한 비트를 제공한 피트 락(Pete Rock) 탓에 참신한 아이디어의 가사적 장점이 빛을 바랬다.

트랩 사운드의 두 곡도 좋은 선택은 아니다. 특히, 디제이 칼리드(DJ Khaled)와 구찌 메인의 목소리가 담긴 "Secure the Bag"을 마지막 트랙으로 선택하여 어색한 여운을 남긴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다행스럽게도, 다분히 의도적으로 만든 스타일스 피의 타이트한 랩 후렴구와 샘플 소스의 적절한 선택이 빛을 발하는 "The Family"가 있다. 그리고 디제이 프리미어(DJ Premier)의 고전적인 작법으로 향수를 자극하는 "Move Forward"가 "The Family"와 함께 앨범의 기둥 역할을 한다.

사실 록스는 앨범보다 팀 브랜드 자체가 높았던 그룹이다. 이후 제이다키스의 랩퍼로서 위상이 높아지면서 록스까지 재조명됐지만, 그들의 인기와 별개로 지난 두 장의 정규 앨범 모두 평작 수준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를 고려한다 해도 꾸준히 각자 커리어를 이어오며 베테랑이 된 뒤 발표한 앨범마저 비슷한 수준에 그쳤다는 건 참 아쉽다. 무엇보다 좋은 프로듀서를 택하지 못했다는 맹점이 너무 쉽게 드러났다. 재결합의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

Article/Review | Posted by epmd 2017. 1. 19. 21:36

Run The Jewels [Run The Jewels 3]


※ 2017년 웹진 리드머(http://www.rhythmer.net)에 기재한 글.

01. Down (feat. Joi)
02. Talk to Me
03. Legend Has It
04. Call Ticketron
05. Hey Kids (Bumaye) (feat. Danny Brown)
06. Stay Gold
07. Don't Get Captured
08. Thieves! (Screamed the Ghost) (feat. Tunde Adebimpe)
09. 2100 (feat. Boots)
10. Panther Like a Panther (Miracle Mix) (feat. Trina)
11. Everybody Stay Calm
12. Oh Mama
13. Thursday in the Danger Room (feat. Kamasi Washington)
14. A Report to the Shareholders / Kill Your Masters (feat. Zack de la Rocha)

Record Label: Mass Appeal / RED
Released Date: 2016-12-24
Reviewer Rating: ★★★★☆

근 4년 사이 킬러 마이크(Killer Mike)와 엘-피(El-P)는 런 더 쥬얼스(Run The Jewels, 이하 ‘RTJ’) 이외엔 별도의 뚜렷한 행보를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만큼 RTJ는 두 아티스트가 공들인 프로젝트였고, 공언한 대로 세 번째 작품이 발표됐다. 원래 2017년 1월 발매 예정이었지만, 예상을 깨고 2016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갑작스럽게 공개되었다. 늘 그랬듯이 무료 다운로드 방식으로.

일단 앨범을 들어보면 이들의 지향점이 달라졌다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사운드의 운용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지만, 가사를 들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불과 2년 전인 [Run the Jewels 2] 시절엔 마초적인 성향이 강했던 반면, 본작에서는 저항적이고 선동적인 면을 부각했다. 이 같은 부분이 예전에도 아예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엔 무거운 주제를 다룬 곡의 비중이 더 커졌다. 그래서인지 이따금씩 엘-피와 킬러 마이크가 저항군(레지스탕스)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쨌든 그들이 사회적인 이슈를 논하거나 멤버 각자의 사연을 털어놓는 순간만큼은 무척 진지해 보인다.

의도적으로 2016년 미국 대선일 직후에 공개하여, 대통령 선거와 연계하여 우리가 미래에 겪을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읊조린 "2100", 미국 내 유색 인종이 겪은 부당한 공권력을 다룬 "Thieves! (Screamed the Ghost)", 지병으로 숨진 엘-피의 친구와 거리에서 숨진 킬러 마이크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Thursday In The Danger Room"과 같은 트랙은 그들이 RTJ로 활동하기 이전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조금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앨범의 색채가 180도 달라진 것은 아니다. 저속하거나 직설적인 표현은 여전히 앨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고,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고 해도 특유의 생동감 있는 가사는 여전하다. 또한, 그루브의 극대화를 표방하며 작정하고 만든 곡이 있는가 하면("Hey Kids (Bumaye)"), [Run the Jewels 2] 때처럼 노골적인 욕설의 향연도 존재하며("Panther Like a Panther (Miracle Mix)"), 전형적인 허풍선이 스타일의 랩("Legend Has It")도 담겨 있다. [RTJ 2]의 분위기와 감흥이 적당한 선에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엘-피를 주축으로 하는 프로덕션은 이번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은 RTJ 프로젝트 3부작 중 가장 정교하다는 인상을 준다. 특히, 앨범 초·중반에 배치된 다수의 곡을 들으면, 이들이 그루브에 대하여 얼마나 진중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지 체감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소스의 첨가와 배제를 자연스럽게 반복하여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는 곡들이 주는 쾌감 또한, 대단하다. "Stay Gold"와 "Panther Like a Panther (Miracle Mix)”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세션 주자를 비롯한 게스트의 참여도 만족스럽다. 무엇보다 켄드릭 라마의 [To Pimp a Butterfly]에도 참여하여 힙합 팬들에게 친숙한 색소폰 주자 카마시 워싱턴(Kamasi Washington)의 연주를 가미한 "Thursday In The Danger Room"은 죽은 동료를 이야기하는 곡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여운을 남긴다. 그야말로 [RTJ 2]에 참여했던 드러머 트래비스 바커(Travis Barker)만큼이나 탁월한 선택이다. 더불어 거침없는 발언과 욕설의 집합체인 "Hey Kids (Bumaye)"에서 대니 브라운(Danny Brown)의 랩은 킬링 트랙의 기폭제 구실을 했고, [Run the Jewels 2]에 이어 다시 참여한 잭 드 라 로차(Zack De La Rocha)는 마지막 트랙에서 힘을 실어주었다. 한편, 여성 랩퍼 트리나(Trina)의 참여는 자연스레 [Run the Jewels 2]에서 활약했던 갱스타 부(Gangsta Boo)와 비교하게 되는데, 후렴구에만 참여하여 강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전작의 뒤를 잇는 여성 게스트로서 본분을 다했다는 느낌이다.

참신한 그루브에 대한 고민과 거침없는 욕설로 마치 '오늘만 사는 사람들' 같았던 [Run the Jewels 2]의 이미지를 좋아했던 사람들에게는 방향을 선회한 이번 앨범이 다소 어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 담긴 다양한 주제는 우리에게 또 다른 즐거움과 흥미를 유발하는 콘텐츠가 될 수 있으며, [Run the Jewels 3]는 전보다 한층 더 정교한 완성도의 비트를 제공한다. 단기적인 프로젝트가 대부분인 현 힙합 계의 풍토와 달리, 엘-피와 킬러 마이크의 RTJ 프로젝트는 어느덧 그들 각자의 커리어에서 정점으로 굳어가고 있다. 이토록 오랫동안 최고의 감각을 유지하는 건 물론, 발전까지 거듭하는 두 아티스트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Book | Posted by epmd 2017. 1. 16. 12:18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 저

유시민 작가가 '영업기밀'이라고 말한 자신의 글쓰기 비법을 고스란히 풀어 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내가 고쳐야 하는 태도가 너무나 많음을 깨닫고 민망함을 호소하게 된다. 2년 전에 읽고 최근에 다시 한 번 읽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부끄러운 건 마찬가지다.


회사원 신분으로 7년 반 동안 생활하면서, 직원 대다수는 글쓰기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맞춤법을 무시한 이메일을 주고 받는 일이 예사였고, 주어와 술어의 관계가 맞지 않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이런 현실에 한탄하는 일이 많았지만, 책을 읽을 때에는 이러한 맹점은 잠시 뒤로 미루고, 다른 점에 주목해 보았다. '못난 글을 피하는 법'이라는 챕터가 안겨주는 교훈이 크다. 중국 글자의 오남용, 만연하는 일본어식 글쓰기와 서양식 글쓰기, 복문과 단문 사용 등 되짚어봐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다.


작가는 복문보다 단문을 많이 쓰기를 권한다. '이것' '저것' '부분' 따위의 단어로 주어나 목적어를 칭하는 '거시기 화법'을 지적하기도 한다(박근혜와 최순실의 사례를 보면 이것이 얼마나 나쁜 습관인지 알 수 있다). 그리고 한자어를 많이 쓰는 것이 품위있어 보인다는 일부의 생각을 전면 부정한다. 유시민 작가는 본인이 예전에 썼던 항소이유서까지 예시로 들면서 잘못된 점을 지적한다.


작가의 말에 대부분 크게 공감하면서도, 실천이 어렵다. 웹진에 꾸준하게 글을 기고하고 있지만, 고백하건대, 나는 단문보다 복문을 쓰는 일이 훨씬 더 많았다. 우리말로 표기해도 의사 전달이 충분히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외국어 표기에 익숙하여 굳이 외국어를 명시한 일도 잦았다.


이러한 좋지 않은 습관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지만 유 작가의 이 책을 통해 최소한 반성하고 성찰하는 시간이라도 가져야 하지 않을까.

Music | Posted by epmd 2017. 1. 12. 12:25

맞춤법 파괴 가사에 대한 단상

가수라면 적어도 노래 제목은 어법에 신경을 써서 지어야 한다는 견해를 나는 20년 가까이 고수하고 있다. 참으로 간단한 이 의견에 어긋나는 대한민국 가수는 한둘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 김광석, 조용필도 예외는 아니고 말이다.

 

"그건 너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때문이야"는 내가 정말 아끼는 故 김광석의 노래이다. 하지만 들을 때마다 맞춤법 파괴의 선봉장 같은 제목이 신경쓰이는 노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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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항상 어떤 초조함이 내 곁에 있음을 느껴
친구들과 나누던 그 뜻 없는 웃음에도
그 어색하게 터뜨린 허한 웃음은 오래 남아
이렇게 늦은 밤에도 내 귀에 아련한데

그건 너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때문이야
그건 너의 마음이 병들어 있는 까닭이야
그건 너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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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잔하다. 광석이형의 목소리는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싶을 정도로 완벽하다.
헌데 가사가 왜 저 모양일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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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너 자신을 사랑하지 않아서야
그건 너의 마음이 병들어 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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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바꾸거나, 운율을 살려 음절의 수를 재량껏 조절해도 된다.
'너의 자신을'이라는 구절부터 어법에 맞지 않는다. '의'라는 조사를 왜 넣었는지 모르겠다.

설령 '그건 너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마음) 때문이야' 라고 단어가 생략된 거라고 해도, 일단 가사 자체가 듣기에 너무 어색하지 않은가?
좋게 생각하고 들으려고 해도 어색하고 불편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다.

 

거장 조용필도 마찬가지. 19집 앨범에서도 "설렘"이라는 곡은 원래 "설레임"으로 잘못 표기한 흔적이 보인다. 노래 가사를 들어보면 '설렘'이 아니라 '설레임'이라고 발음한다.

 

조용필 1집부터 19집까지 모든 앨범을 소장하고 있는 입장에서, 그가 오랫동안 '설레인다'라는 철자 파괴 가사를 수차례 사용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설레임'이라는 잘못된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작사가와 가수 모두 현재의 맞춤법에 관심이 부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나도 모든 맞춤법 파괴에 부정적이지는 않다. 의도성이 뻔히 보이는 표기는 너그럽게 넘어가려는 편이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작년 방영한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부활 3집의 [흐린 비가 내리며는] 등이 그 예이다. 그렇지만 의도적인 것보다는 '몰라서(무식해서)' 혹은 '철자 준수에 관심이 없거나 등한시해서' 맞춤법에 어긋나게 표기한 노래 제목이 더 많을 것이다. 이 문제를 가볍게 생각하면 곤란하다. 자신이 사용하는 말과 글이 가져다 주는 파급력이 큰 사람은 그만큼 언어 사용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국어를 사용하는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문법은 당연히 공부해야 한다. 맞춤법 공부에 머무르지 않고, 잘못된 글쓰기를 피하는 연습도 병행해야 한다.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바쁘다는 이유로 이런 이슈에 무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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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to [Pentoxic] (2008)

협소한 한국 힙합계에서 독창적인 랩을 하는 선수를 알게 되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펜토(Pento)의 1집을 샀던 2009년 봄에도 유난히 기분이 좋았다. 펜토는 관절을 꺾는 것처럼 부자연스러운데 허술하거나 어설프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특이한 랩을 구사했고, 그 흡입력은 어마어마했다. 나는 늘 화려하고 현란한 랩을 즐겨 들었는데, 펜토의 1집도 그런 면이 많이 부각되어 있어서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최고의 중독성을 자랑하는 앨범의 첫 곡 "Gun Rap"은 수십 번을 들었고, 중반부의 "Commandos"도 좋아했다. 게스트가 많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을 뿐, 창의성으로 따지면 그 해에 이만한 앨범이 없었던 것 같다.